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산업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 금융사고에 대해 발생 원인 등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17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나온 발언이다. 금융계 검찰인 금감원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말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밝힌 '금융시장 선진화'와 묶어 보면 말의 무게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금감원은 일반인이 금융기관과 분쟁을 벌일 때 기댈 마지막 보루다. 금감원이 바로 서야 금융기관 기강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사태들은 금감원의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했다. 막대한 손실을 일으킨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사태의 경우, 투자자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금융 감독기관들의 역할과 책임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손실 확정 계좌 원금만 10조4천억원, 손실 금액은 4조6천억원에 이르는 대형 사고인데, 만기 손실이 확정돼 자율 배상에 동의한 소비자들이 판매사들로부터 받은 돈은 손실 금액의 평균 31.6%에 머물렀다. 이런 와중에 신한투자증권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선물 매매 관련 1천300억원(추정)대 대규모 운용(運用) 손실까지 발생했다. 금감원은 14일 검사반을 파견하는 한편 증권업계 전반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금융권 횡령(橫領) 사고도 숙지지 않는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7년간 금융권 횡령액만 1천900억여원에 이른다. 그런데 환수액은 180억원도 안 된다. 게다가 횡령 사고 지시자·보조자·감독자 등 586명 중 중징계자는 20% 미만이다. 대부분 주의·견책에 그쳤다. 남의 돈을 떼먹어도 멀쩡하다면 선진 금융은 물 건너갔다. 지난 2022년 11월 금감원이 횡령 사고 방지를 위해 내놓은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이 무색할 정도로 횡령액은 오히려 증가세다. 2020년 20억원 수준에서 2022년 827억여원, 2023년 644억여원에 달했다. 올 들어 8월까지 횡령 규모가 140억여원이다. 신뢰 잃은 금융은 자본주의의 암 덩어리다. 암 주위 생살까지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완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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