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통합이 순리다'

류우익 서울대 명예교수

류우익 서울대 명예교수.
류우익 서울대 명예교수.

"본래 하나였던 것이 다시 하나로 합친다."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토해냈던 말이다. 독일 통일에 대하여 "자기기만적 거짓말(Lebenslüge)"이라고 부정하던 정치인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진실을 직시하고 자기를 부정한 것이다.

한 세대 전의 이야기를 꺼낸 연유는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본래 하나이며, 따라서 통합이 순리(順理)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중심지(central place)와 배후지(hinterland)는 합쳐서 하나로 작동하는 단위 지역이다. 지역 구조는 유기체와 같아서 인위적으로 분리해 놓으면 혼란과 비효율이 발생한다. 대구와 경북은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이 순리다.

통합 논의를 시작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그리고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의 통찰과 결단이 훌륭했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논의를 확장시킨 지역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치권의 치졸한 행태에 온 국민이 지쳐가고 있는 때에 지방에서 국가의 미래와 민생을 위한 정책 논의를 시작한 것은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대구경북 행정구역 통합의 제일의(第一義)는 지역 본래의 일체성을 회복시키는 데에 있다. 구조가 완전한 모습으로 바로 서야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게 된다. 사람과 물자, 정보의 유통이 활발해지고 주민들 생활이 편해진다. 무엇보다 생활공간의 현상과 인식이 합치되면 사람들 마음이 편해지고 인간관계가 원만하게 된다.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합치면 국내 최대의 행정구역이 된다. 규모의 경제에 따른 편익이 발생한다. 몸집이 커지는 것만으로 비용이 절감되고 효율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행정절차에서부터 낭비와 규제가 줄어들고, 지역의 대외 협상력이 커진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기업의 경쟁력은 강화된다.

그리하여 통합된 대구경북 지역은 수도권 집중을 견제할 만한 역동성을 갖게 된다. 미증유의 수축 악순환을 멈추고 나아가 재생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균형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통합의 이득이 이렇게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려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대효과에 대한 회의(懷疑)와 이해관계의 상충이 그것이다.

먼저, 상응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덩치만 커지고 혼란만 가중될 뿐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염려는 기득권에 안주하는 중앙정치의 행태를 보면 일리가 있다. 특히 소멸 위기에 직면한 낙후한 주변 시군들이 변화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통합 이후 권한과 지원의 문제 등 고민해야 할 문제들은 많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행정 체제 개혁이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선도하고 있는 만큼 특별법이라도 제정해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고 통합 행정기관의 집행 기능을 강화해 주어야 한다. 충분한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하여 스스로 비전을 세우고 추진력을 내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다음은 통합 행정구역의 명칭과 청사의 입지 문제이다. 명칭은 지역의 정체성에 관계되는 중요한 이슈이다. 통합 행정구역의 중앙 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가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행정구역의 명칭과 청사의 입지 문제는 당장 합의해서 결정하려 들기보다는 일단 괄호 속에 넣어두고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본질이 아닌 사안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가 필요하다. 당사자들은 부차적이거나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미래를 내다보고 대의를 받들어야 한다. 주민들에게는 이치와 도리를 중히 여기며 '나라는 우리가 지킨다'고 자부하는 전통적 애국 애향 의식을 발휘할 것을 당부한다. 그리하여 대구경북의 통합이 한반도 통일이라는 더 큰 순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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