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경훈 칼럼] ‘한국전쟁은 대리전’? 지적 게으름인가 오만인가

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그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해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 중 일부 주제에는 완벽하게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그가 우연히 들춰보게 된 책 몇 페이지에서 끌어낸 견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럼에도 어느 경우에나 권위자의 풍모를 풍기기는 마찬가지였다"('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토머스 소웰)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동료 경제학자로 케인스의 전기를 쓴 로이 해로드(Roy Harrod)의 케인스 평가이다. 케인스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아는 척 '폼'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인 일반에 해당하는 문제다. 제 분야에서 거둔 우수한 능력과 성과를 다른 분야에서도 통달한 듯 행동해도 되는 면허증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도 그 대열(隊列)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노벨문학상, 프랑크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의 맨부커 상을 받은 다음 해인 2017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을 보면 그렇다. 맨부커상을 받아 문학으로는 인정을 받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유아(幼兒)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한강은 '한국전쟁은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한 대리전이었다고 했다. 과거 좌파들이 퍼뜨린 악성 선전의 반복이다. 이런 요설(妖說)은 소련 붕괴(崩壞)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소련 비밀 문서가 대거 공개되면서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을 설득해 일으킨 한반도 적화 남침 전쟁'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를 몰랐나? 그렇다면 절망적인 지적 게으름이요 무지다. 알고도 그랬다면, 사실(史實) 자체는 물론 그것을 밝혀낸 수많은 사람들의 지적 성과를 몽땅 부정하는, 더 질 나쁜 오만이다. 무엇보다 이는 김일성의 전쟁 책임을 희석(稀釋)시킨다는 점에서 도덕적 파탄이다.

기고문이 논란을 빚자 한강은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궤변(詭辯)이다.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인식'은 도대체 어떤 인식인가. 한국전쟁이 '대리전'이면서 '김일성의 남침 전쟁'이란 것인가?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한국전쟁에 대한 모호한 인식이 어떤 점에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조지 오웰은 "명료한 언어의 대적(大敵)은 불신실(不信實)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관용구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라고 했는데 딱 그 꼴이다.

평화 근본주의(根本主義)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그는"우리는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에 의한 해결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도대체 승리라는 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 아니라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했다. 철부지 평화주의자들의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허위적 구호(口號)의 재연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물음의 답은 당연히 평화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이미 갈파(喝破)한대로 평화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복이다. 항복의 대가로 얻은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일까? 그렇다면 대한제국이 전쟁 없이 나라를 일본에 내준 것도 평화이다. 한강은 이 땅의 사람들이 이런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나? 기고문을 보면 그렇게 보이는데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제1야당 대표와 한 줌의 그 추종자 무리 말고는 그런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단언컨데 없을 것이다.

의문은 그치지 않는다. 승리라는 것이 과연 "공허한 구호이고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일까? 2차 대전 중 영국 총리 처칠의 트레이드 마크, 'victory'(승리)를 뜻하는 'V' 사인이 '공허한 구호'였고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이었나? 공산권 붕괴를 일궈낸 레이건의 빛나는 승리도 그런 것이었나?

한강은 "한국은 몸서리 친다" 운운하면서 평화를 갈구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자가 누구인가? 남한인가? 미국인가? 북한 김정은인가? 그의 글은 미국을 지목하고 있는 듯 한데 노벨문학상이 여기에 정당성을 부여해줄까? 지금도 그 때와 같은 생각인지, 그의 작품에 그런 생각이 녹아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