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65> 음악의 페미니즘, 비제 '카르멘'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카르멘(1896) 포스터
카르멘(1896) 포스터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젊은 여성 작가의 뜻하지 않은 수상 소식에 놀라면서도 환호의 박수를 쳤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독자들이 주목하는 작품에서 다소 벗어난 "노랑무늬영원"이라는 단편집을 빌려서 읽고 있다. 노벨위원회의 발표처럼 작가는 여성적 글쓰기의 섬세함과 치밀함을 통해 내면 탐구의 조용하고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작품 곳곳에 묻어나는 페미니즘과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매우 사적이면서도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다. 문체 또한 순간과 영원 사이 깃털 같은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남성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의 세계이다. 예전에 비해 여성에게 약간의 자리를 내주기는 하나 여성의 능력을 상대적으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로 여성의 활약을 반기지 않는 환경이다. 뉴욕타임즈도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계 분위기를 언급했다.

음악에서 여성의 존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나타나는 작품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1875)'이 처음이다. '카르멘'은 비제의 대표작으로 음악과 극의 융합이 뛰어나며 합창과 관현악의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프랑스 오페라의 대표작이다.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소설 '카르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비제의 관현악 모음곡 '아를의 여인'이 베일 뒤에 숨겨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여자였다면 '카르멘'은 윤리적 도덕적 베일을 과감하게 젖히고 나온다.

카르멘은 매혹적이면서도 당혹스러운 집시 여인이다. 그녀는 거리낌 없이 남자를 유혹하고 사랑하고 배신한다. 전통적 여성의 이미지와 관습을 뛰어넘는 자유롭고 관능적인 집시의 모습은 당시 관객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평단의 찬사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니체는 바그너와 비제를 비교하며 기독교적 윤리를 벗어난 쾌활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의 등장과 그들이 보여주는 저속하지만 역동적인 삶을 높이 평가했다. 니체는 바그너의 '헌신적인 사랑과 구원'이라는 개념과 정반대인 카르멘의 잔인하고 호전적인 사랑과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러한 증오가 오히려 사랑의 본질이라고 찬미했다.

사랑은 자유로운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기병대 하사관 돈 호세는 하바네라를 부르며 유혹하는 카르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 당신은 날 조심하세요.' 착하고 얌전한 약혼자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호세는 도발적인 집시 여인의 유혹을 거역하지 못한다. 탈영한 호세는 집시들과 어울리면서 밀수, 강도짓에 말려들고, 그 사이 카르멘에게 반한 새로운 인물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등장한다. 카르멘의 마음은 어느새 에스카미요에게로 가고, 4막에서 카르멘은 에스카미요의 연기를 보기 위해 성장을 하고 투우장에 나타난다. 카르멘을 찾아온 호세는 사랑을 애걸하지만 그녀는 호세가 준 반지를 뽑아 집어던지며 소리 지른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자유롭게 죽겠다!'

호세는 새의 자유에 매혹 당했지만 새의 자유를 견딜 수 없었다. 거칠지만 우수가 깃들어 있는 호세와 간특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카르멘의 초연한 체념을 헤아려보노라면 두 주인공은 표피적이거나 추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사람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현실 속의 인간임을 알게 된다. 남의 이목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도전적으로 살아가는 카르멘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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