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일어탁수(一魚濁水)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미꾸라지(물고기)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一魚濁水)

중국 속담에도 '쥐똥 하나가 죽 솥 전체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최근 정치권에 딱 들어맞는 말일 성싶다. 국민들은 기성 언론과 유튜브 미디어를 통해 연일 계속되는 믿기 어려운 의혹 제기와 폭로를 목도(目睹)하면서 무엇을 느낄까. 도대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허위인지 분간(分揀)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 정치 브로커와 대통령실 전 행정관의 녹취록 내용과 주장 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면서 경악(驚愕)을 넘어 참담(慘憺)하기까지 하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최근 3~4년 사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과시(誇示)하는 과정에서 숱한 의혹을 마구 쏟아내면서 정치권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 있다. "(나를 구속하면) 한 달이면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현직 대통령과 검찰을 협박하는 형국(形局)이다. 특정 연령대의 응답자 수를 부풀려 지지율을 "2~3% 올려라"는 통화 녹취록은 여론 조작 정황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또 창원국가산업단지 선정과 관련해서도 명 씨가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는 점, 선정 결과를 사전에 입수한 경위 등을 놓고 이권 개입 의혹이 일고 있다. 전 여당 대표부터 광역단체장, 국회의원 등이 각종 선거 과정에서 명 씨와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국(政局)이 '명태균 게이트'로 빨려 들고 있다. 이 같은 정국 혼선을 벗어나는 길은 검찰의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밖에 없다. 명 씨의 녹취록과 김영선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회계 책임자를 지낸 강혜경 씨의 녹취록과 증언 등에 비춰 볼 때 불법 여부에 대한 규명은 그리 복잡하거나 어렵게 보이지 않는다. 공천 개입·여론 조작·이권 개입 여부(與否)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재판이 정국 혼란을 매듭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方策)이다.

'대통령실 십상시(十常侍)'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공격 사주' 발언을 한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 행정관도 소용돌이 정국을 파생(派生)한 또 다른 당사자다. 김 전 행정관이 한 인터넷 언론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건희 여사가 지난 22대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또 김 여사 주변에 "십상시 같은 애들이 있다"며 "여사가 어린 애들을 쥐었다 폈다 하며 시켜 먹는다. 40대이고, 박근혜 정부 때 있던 애들"이라는 녹취록도 나왔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안팎의 구체적 인물 3, 4명을 적시(摘示)하기도 했다. 총선 출마에 나섰다 공천을 받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토로(吐露)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대통령실 내부 상황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외부에 마구 내뱉은 처사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비록 논란이 되면서 그만두긴 했지만, 이런 인물이 연봉 수억원의 SGI서울보증보험 상임감사위원직으로 가게 된 과정도 미심쩍다. 대통령실의 인사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 일련의 사태는 권력자든 정치인이든 주변에 어떤 인물을 등용하거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사달이 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물가 등 심각한 국내 경제상황, 우크라이나와 중동전쟁 등 국내외에서 일고 있는 거센 파고 속에서 한낱 정치 브로커와 전직 대통령실 직원에 의해 정국이 뒤흔들려서는 곤란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명 씨와 김 전 행정관이 촉발한 분란(紛亂)에 대한 규명은 검찰에 맡기고 민생과 외교 안보에 진력(盡力)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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