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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장기 저성장의 늪이 도사리고 있다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경제 상황이 심상찮다.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단기 처방으론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逢着)했다. 고도성장 시기엔 박차고 뛰어오를 힘이 충분했지만 저출산·고령화라는 모래주머니를 잔뜩 차고선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렵다. 풍부한 노동력과 뛰어난 인재, 쉴 틈 없는 기술 개발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고성장 시대를 지나왔는데 그런 동력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위기감마저 든다. 방심하다간 '저성장의 늪'에 빠질 판이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2.0%로 추정됐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을 총동원해 물가 상승의 부작용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말한다. 잠재성장률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오래전부터다. 1970~80년대 9%대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 6.7%로 낮아졌고, 2000년대엔 4.4%로 떨어졌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시절 3%대에 머물다가 문재인 정부 때 처음 3% 이하로 내려앉았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정부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가 있다. 생산 인구의 감소, 즉 저출산 영향이 큰 탓이다. 다만 설비투자 등 자본·자원의 투입을 따져보면 하락세 반전(反轉)은커녕 가속화했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2.1%로, 이명박(4.8%)·박근혜 정부(7.2%)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누구 잘못이 더 크다고 결론을 내기는 억지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잠재성장률 하락이 현 정부 탓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갖 악조건을 감안해도 잠재성장률이 미국에 뒤처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2.0%로 나타났다. 그런데 미국은 2020∼2021년 1.9%에서 2022년 2.0%, 2023년 2.1%로 올라섰다. 지난해부터 우리를 추월한 것이다. 미국 GDP 규모는 우리의 15배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총요소생산성(總要素生産性) 증가율, 즉 노동·자본·자원의 총동원 능력이 떨어진다. 역량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보다 낮다는 것은 허투루 여길 문제가 아니다. OECD가 예측한 2030~206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 평균치는 0.8%대다. '0%대 저성장 시대'가 현실이란 말이다.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저출산 해결에 국운이 달려 있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71.1%(3천674만 명)에서 2072년 45.8%(1천658만 명)로 떨어진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로 생산연령인구는 가파르게 줄어든다. 노동력 부족을 자본·기술 투입으로 채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세수(稅收) 부족 상황에서 기술개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도 없다. 반도체·2차전지·인공지능 등에 전 세계가 기술 보조금 경쟁을 벌이는데 우리는 2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구조개혁이 답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뜯어고쳐야 한다. 고령 인구의 노동력을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자본의 합리적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현 정부가 내놓은 역동 경제 로드맵, 즉 혁신 생태계, 공정한 기회, 사회 이동성은 바로 구조개혁의 틀이다. 다만 여전히 뭔가 제대로 이뤄진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추진력을 가지려면 기업 밸류업, 정년 연장, 교육 개혁 등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 명분조차 희박한 정치 다툼으로 허송세월을 보낼 겨를이 없다. 이대로 가다간 저성장의 늪에 빠진 정권이라는 오명(汚名)을 쓸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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