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껍데기만 남은 문화예술 도시 대구

한윤조 문화팀장
한윤조 문화팀장

첫 문장부터 막막하다. "대구는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자부한다"는 현재형의 문장을 쓰려다 '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바꿔야 하나라는 고민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에겐 이런 자부심이 남아 있긴 한가? 최근 예술계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 우린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한때는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은 물론이고 시민들까지 대구가 서울을 제외한 최고의 문화예술 중심지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6·25 이후 수많은 예술인들이 향촌동 인근에 둥지를 틀고 예술 활동을 펼쳤고, 이는 향후 수십 년 동안 대구의 음악·미술·무용·연극의 토양을 건강하게 하는 자양분(滋養分) 역할을 해줬다.

서울 외 도시로는 최초로 전문 공연장을 지은 것도 이 같은 자부심에 큰 몫을 했다.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 개관, 2013년 대구콘서트하우스(당시 대구시민회관) 재개관을 통해 클래식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인기를 끌었다. 기세를 모아 2017년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에 가입했고, 올해는 대구국제성악콩쿠르가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

2006년 프레 행사를 시작으로 2007년 본격 막을 연 대구국제뮤지컬축제도 대구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때는 대형 뮤지컬이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선 대구시장 선(先)확인이 필요하다는 성공 방정식이 통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다 옛날이야기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문화예술 도시'를 표방하며 신규 인프라 확장에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반면, 대구는 이미 노후할 대로 노후한 시설만 즐비한데도 예산을 확보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경쟁력은 뒤처졌다.

물론 '시설'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지역 예술인을 지킬 만한 무대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산 삭감으로 문화예술계에 돌아가는 돈이 쥐꼬리만 해진 것도 문제지만, 그 적은 예산마저도 남의 동네 잔치판으로 만드는 데 뿌려질 뿐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쓰여지는 돈은 거의 없는 현실이다.

각 공연장마다 '지역 예술 활성화' 프로그램을 갖추고는 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핵심 역할은 서울 등 타 지역에서 맡고, 지역 예술인들에게 돌아가는 자리는 역할도 예산도 미미할 뿐이다. 특히 주요 기관장들이 타지인으로 다수 교체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예술인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인프라가 있다 해도 '문화예술 도시 대구'는 그저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뿌리 같은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역 예술인들이다. 신인부터 중견, 그리고 원로까지 다양한 세대의 예술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성장하고 외부로 뻗어 나갈 때 그게 진정한 대구 문화예술의 힘이 되는 것이다. 변변한 산업 기반이 없는 대구의 현실에서 대외 상품 경쟁력은 '문화예술'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수장이 새롭게 선임됐다. 다른 곳 아닌 '대구'의 문화예술 수장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일은 여기저기서 사 온 '남의 무대'만 즐비한 대구 문화판이 아닌 진정한 우리의 판을 다시 짜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산 깎기에만 여념 없는 대구시도 생각을 전향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도시 경쟁력을 논할 때 더 나은 정주 여건을 제시하고 품격 있는 도시로 평가받기 위한 '문화예술'은 필수 요건임을 명심하고 이에 대한 투자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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