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대한민국은 신정아의 학력 위조 파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화개장터'의 가수 조영남은 2016년에 조수를 기용해 팝아트를 그린 화투 작품들이 위작(僞作) 논란에 휩싸였다 "작가는 아이디어를 주고 조수가 대작을 하는 것은 현대미술계의 관행"이라며 대한민국 한복판에 외쳤다. 여론 분위기는 차가웠다. '미학' 전공자이면서도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진중권 교수는 작품의 핵심은 '콘셉트'(concept)라며 "작가가 몇 퍼센트 개입해 작품을 만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라며 현대미술의 예술창작 논리로 위작 논란의 진실을 방어했다. 법과 현대미술의 관행 사이에서 대중들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2020년도에 대법은 무죄를 선고하면서 위작 논란은 마침표를 찍었다. 이뿐인가. 위작 논란의 대표적인 작품은 1991년부터 점화된 천경자의 '미인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는 위작에 휩싸였고, 천경자 화백은 "내가 낳지도 않은 자녀를, 당신 자녀라고 윽박지르면 어떡하냐"고 유명화 일화를 남겼다. 미술계는 '정신이 이상해져 자식도 몰라보는 어미'라고 받아쳤다.
천 화백 사후(死後) 이후 가족은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다중스펙트럼, 초고해상도 단층촬영 등 첨단 기법을 통해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감정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미인도'를 포함한 천 화백의 진품 13점을 감정한 서울중앙지검은 광학연구소가 사용한 계산 방식을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 적용했더니 진품 확률이 4.01% 수준으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경자 화백의 자식도 몰라보는 친자 논란 마침표에 유족은 절규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위작과 학력 위조 논란을 이야기한 것은 극단 행복한 사람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씨어터 쿰, 연출 원종철)가 대한민국 위작 논란의 사건들이 모티브 됐기 때문이다.
◆ 진실의 실체를 추적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연극<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희곡의 구조가 촘촘하면서도 영화와 드라마적인 감각적 희곡을 써오고 있는 신성우 작가의 작품이다. 극중인물 '그레이스'(서지유 분)는 재벌가 사모님을 상대로 클램핑 미술품 경매를 통해 사기극을 벌려온 그레이스를 검사(김동현 분)가 취조하면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극중인물 검사와 변호사를 1인 2역으로 하면서 2인극으로 구조된 작품이다. 극단 행복한 사람들은 2018년 1번 출구연극제를 통해 공연되면서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분리해 희곡과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가 볼만하다.
위작 논란을 둘러싸고 있는 진실을 파헤쳐가는 극 중 인물들의 스릴이 이 작품의 강점이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선 인간들의 위선과 소비의 욕망, 추악한 인간의 민낯들을 때로는 웃음과 긴장감으로 85분을 끌고 간다.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흙수저 출신의 검사는 취조(取調)하면서 피의자와 밀월을 즐기는 욕망과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미술품 사기 혐의자 그레이스의 변호사(신현종 분)는 권력과 결탁해 그레이스를 시대의 사기범으로 몰아가면서도 연극의 종점에서는 실체가 없는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스릴러 블랙코미디'처럼 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위작 논란은 극 중 가상의 화가 박흥용 화백이 그린 1991년도 작품 '소녀'이다. 그레이스는 이 작품을 국내 재벌 사모님들을 상대로 수십억에 달하는 경매로 낙찰받게 했다. 그 뒤. 박흥용 화백이 1990년도에 사망한 사실이 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알려지면서 위작 논란이 휩싸인다. 사모님들이 사라져 피해자가 없는 사기극이 된다. 연극은 위작의 실체를 추적하는 검사와 "죄지은 게 없다"고 말하는 그레이스 사이의 진실을 추적한다. 희곡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 인간의 욕망
무대는 현대 설치미술처럼 미니멀 하다. 공간은 취조실, 검사 기자회견장, 그레이스와 검사 내면의 추악한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환상의 공간으로 변주된다. 앞면 무대 공간(배경)을 뒤편까지 확장해 극 중 장면의 변화에 따라 수동식으로 열리는 구조이다. 그레이스가 박흥용 화백의 작품을 클램핑 경매하는 공간이다. '소녀'의 실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색상의 프레임 액자만 걸려있다. 취조실의 프롤로그 장면부터 검사와 그레이스 사이에 신원확인 절차부터 긴장감이 흐른다. "그레이스 최"가 맞냐는 검사 물음에 그레이스는 "나는 지은 죄가 없어요."라며 받아친다. 배우들의 음성만으로 분위기는 냉소적이다. 검사가 내려치는 탁자 소리에 무대는 과거로 이동되고 클램핑 경매의 시간이다. 이 장면에서 신성우 작가가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감각적인 설정 들을 드러내는 데 극적인 기승전,어메이징을 위한 극의 정보들을 쏟아낸다.
그레이스도 사기극을 위해서는 작품 출생의 논리적인 스토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경남 통영에서 농가를 빌려 은둔생활을 한 박 화백의 정보들을 흘리고, 91년도 작품이지만 90년도부터 은둔한 사실들과 박흥용 화백이 그레이스 최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정보들을 말한다. 중세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의 파란 블라우스의 그림 속 인물은 1337년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영국을 물리친 인 소녀, 잔다르크였다는 스토리로 그림의 가치를 올리고 23억까지 치솟는다. 이어지는 장면은 재벌가 미술품 사기 사건에 대한 검사의 기자회견 브리핑이다. 검사는"지금 박흥용의 소녀, 그거 샀다는 사람이 없어요. 고통스럽게 목을 치라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지금 사라졌어요, 쏙 들어갔어요. 지금 피해자가 없어요, 사람을 잡아놨는데. (중략) 연줄 없는 흙수저, 저보고 독박 쓰라는 거죠. 원래 담당 검사님이 저 위쪽 라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투입된 겁니다." 김동현 배우는 사기 사건 브리핑 PT를 하면서도 리얼한 즉흥적인 웃음을 터트린다.
4장은 시대의 사기 사건을 파헤쳐 출세하려는 검사의 이중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두 사람만의 상상으로 애정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환상의 장면이 비추어질 때쯤 관객들은 "검사도 가짜아냐 "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현실로 돌아온 그레이스는 "가짜는 증명할 수가 없어요, 완벽하니까"라며 검사 추궁에 받아친다. "세상에 하나뿐인 위작은 증명할 수 없는 완벽한 진품"이라는 그레이스는 정말 잘된 위작을 가져오면 피카소가 서명을 해주겠다고 말하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위작의 실체는 점점 밝혀질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흥미로운 장면은 '소변'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사( 신현종 분)의 등장으로 최면에 걸린 듯 고백하는 그레이스가 어린 시절을 아버지와 박흥용 화백의 관계를 고백하는 독백이다. 물론, 그레이스는 검사가 변호사를 통해 진실을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말이다.
그레이스의 고백은 조영남 위작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무명 화가인 아버지는 세상에 한점뿐인 박흥용 화백의 그림을 그렸고 아버지 그림이 평단 평가를 받으면서 박 화백이 위작이라고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자살한 아빠를 위한 복수로 아빠의 위대한 그림을 경매해 왔다는 사실들이 밝혀진다. 물론 가짜다.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극적인 긴장감과 스릴러적인 블랙코미디는 이 장면에서부터 재점화된다. 재미교포 그레이스 최의 진짜 인생을 밝히겠다는 검사는 미국 법무부에 신원조회를 협조하고 신분만 확인되면 기소할 수 있다는 검사의 대사가 들린다. 관객은 마지막에 '그레이스 최'의 비밀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예측한 상황을 뒤집히는 극적인 반전은 숨어있다. 국제 특송으로 태평양을 건너온 서류에서 그레이스 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할머니로 밝혀지고 박흥용 화백과 아버지의 관계도 실체를 알 수 없게 극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로 흘러간다. "넌 누구야?"라는 검사의 말에 그레이스는 "글쎄, 나 누굴까?"라고 말한다.
◆ 희곡에 숨겨져 있는 '블랙 코미디적인 반전'과 '배우들의 연기
'마지막 장면은 그레이스의 경매 육성 녹음이 흘러나오고 무대는 액자가 걸려있는 클램핑 경매장으로 전환된다. 그레이스는 액자 속 잔다르크의 소녀가 되어간다. 그 뒤 들려오는 녹음 소리는 "저는 진짠가요? 가짠가요?"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위작 논란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진위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위작을 둘러싸고 있는 단 한 점만 남아있는 유명화가의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진실의 실체와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미술품으로 자본의 욕망만을 소비하는 이중적인 인간의 진실을 타격하며 심리스릴러 블랙코미디적인 반전을 거듭하며 85분을 채운다. 위작의 진실도 검사, 변호사, 그레이스 최의 실체도 알 수 없는 마지막 장면까지 따라가면 관객은 신성우의 스토리에 한 방 맞은 기분이 들게 된다.
이번 공연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대중적인 서사를 써오고 있는 신성우 작가의 희곡도 장점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을 견인하는 동력이다. 서지유 배우는 이번 공연으로 배우가 무대에서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연기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레이스로 분하면서 표현해 주었다. 배우 김동현만의 연기 스타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만들었으며 신현종은 존재감만으로도 자칫 웃음으로만 흐를 수 있는 극 중 장면에서 극적인 무게감을 주었다. 특히 24시간 자동차 출동 서비스를 하면서 연출을 한 원종철 배우는 공연 제작이 적자인데도 "이 작품을 정말 다시 하고 싶었어요. 작품에 기대감이 있어서 목숨 걸고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고 공연이 끝난 뒤 "제작비는 어떻게 감당할 건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 앞으로 죽기 살기로 24시간 자동차 출동 서비스에 매달려야죠. 오픈런처럼 재공연을 다시 할 겁니다." 이게 어메이징 원종철이다.
원 연출은 프로듀서로 내달 6일부터 12월15일까지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제5회 '여주인공 페스티벌' 을 개최한다. 페스티벌에는 극단 마음같이< 그대는 봄>(작, 김정숙 연출, 현대철 11.6~10일)이 공연되고 극단 소금 창고의 <특별한 방문자>(작, 김수미 연출, 이자순 11월13~17일)가 공연된다. 극단 사개탐사& 작은신화<우쿠리 낫:녀노소>(작 에비 팬버트)는 박혜선 연출로 이경성, 정세라, 한해린, 박소아, 조민정이 출연한다. 이어서는 극단 노랑망토<민들레>( 작,연출 양종윤 11월27~12월1일)와 극단 지구연극 < 기획2팀>(작, 이현 연출, 최서은 12월 4일~8일)까지 여주인공페티벌이 이어진다. 모놀로그 토크쇼< 나는 배우다> 에서는 박장렬, 문삼화, 원종철이 MC를 맡고 배우 고수희, 남기애, 김화영, 이도유재, 손숙 등이 릴레이로 오른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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