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25일 열린 세미나에서 군부정권 유지를 목표로 유치에 나섰던 서울올림픽이 도리어 민주화를 앞당기고 다방면에서 한국이 국제 기준을 받아드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태우 정부 시기 올림픽의 대내외적 의미' 세미나는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 열린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였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의미를 돌아보고, 2036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한 동력도 찾는 자리였다.
서울올림픽과는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노 전 대통령의 행보도 새삼 돌아볼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에 나서면서, 대통령으로서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되는 '북방 정책'을 구상하고 현실화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노 전 대통령의 '북방 정책'을 다룬 김학준 전 인천대 총장의 저서가 소개되기도 했다.
기조연설에서 노태우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국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낸 이병기 노태우센터 자문위원은 "36년 전 올림픽을 유치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오늘날 같은 국제 위상과 높은 국민소득 누릴 수 있었을까 늘 생각한다"며 "88년 올림픽의 성과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1988년도 올림픽 불과 10년 전인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 대회가 한국의 첫 국제 스포츠 이벤트였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이었다고 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올림픽 유치를 결심, 10·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국내 정치 상황과 재정 여건 등으로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올림픽 유치를 포기한다고 발표하는 등 부침 속에서 올림픽 유치 도전이 이뤄졌다.
1981년 7월 정무장관이 된 노 전 대통령은 박종규 체육회장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에게 올림픽 유치를 '강력히 건의'했고 대통령의 유치 추진 결심을 받은 게 9월 3일이었다. 이어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1988년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선정되는 등 매우 짧은 시간에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옥광 충북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경제위기 극복, 국제 이미지 쇄신, 스포츠를 통한 국민 우민화 정책 등 정권 유지를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2차 오일쇼크 등의 여파로 국제교역 환경이 악화돼 경제 침체가 심각했다. 불황에 빠진 건설 등 당시 주력 사업의 돌파구로 올림픽 개최가 선택된 셈이었다.
국내 정치적으론 전두환 정권은 군사쿠데타로 집권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계기로 국민적 반발이 심각했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어떻게든 응답할 필요가 있었다.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후에도 상황은 어려웠다. 전두환 정권을 바라보는 국제 여론, 소련의 올림픽 불참 가능성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국제사회에서 개최지 변경까지 거론됐다.
당시 노태우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은 1984년 5월 스위스 로잔에 IOC본부에서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과 만나 "88올림픽 개최지가 변경되면 그날을 IOC 장례일로 정해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IOC 공동묘지를 만들고 대대로 IOC 위원들을 원망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 등 막후에서 올림픽 개최를 사수했다.
이에 IOC를 통해 소련과 동구권 국가의 올림픽 참여를 보장받는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쳐, 미국과 소련을 비롯해 160개국이 참여하는 올림픽을 열 수 있었다.
◆민주화·냉전 종식…북방 정책으로 국가 수준 업그레이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내 정치 안정이 필요했다. 이 위원은 "올림픽이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민주적 정권 이양 등을 약속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결심하는 숨은 계기"라고 했다.
국제적으로 서울올림픽은 냉전 종식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도 있다. 개도국으로 인식되던 한국의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목격한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이 자유·시장경제로 전환을 선택하는데 마중물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공산권 국가들과 스포츠 외교 활동을 경험하면서 공산국과 관계 정상화 등 '북방 정책'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고, 대통령이 된 이후인 1989년 헝가리, 폴란드 등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등 북방 정책을 실행해 나갔다.
이날 세미나에서 '대한민국 북방 정책'의 저자이자 노 전 대통령의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을 지낸 김학준 전 인천대 총장은 북방 정책은 '우리 스스로 국가 운명을 개척하는 진취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방 정책은) 임기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45개국과 수교 성과를 이뤘다"며 "동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외교영토와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유엔 가입을 실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지난 8월 15일 희수(喜壽)를 맞이했다. 북한의 핵 위협뿐만 아니라 열강의 전쟁터에 끌려들어가는 위험에서 벗어나, 평화를 유지하면서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복합 과제에 직면했다"며 "한민족 번영과 세계화 시대 주도적 역할 수행을 위해 새로운 북방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36년 올림픽 추진 서울…대한민국 재도약 기회?
올림픽은 우리나라의 수준을 다방면에서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을 거치면서 수기 위주로 이뤄졌던 정부의 보고 체계에 '워드프로세서'가 도입되는 등 전산화가 이뤄졌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설치, 올림픽 수익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 조성, 체육 인프라의 대대적인 보급, 생활체육의 활성화 등이 이때를 계기로 이뤄졌다.
서울올림픽 경험은 서울시의 2036년 올림픽 유치 작업에 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대한체육회가 유치 희망 지역을 모집하고 있고, 서울은 유치지역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김병민 서울 정무부시장은 "서울은 올림픽 유치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며 "잠실 올림픽 경기장도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변화해, 이미 조성된 인프라를 활용하면 흑자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올림픽 유치가 정치권과 정부의 몇몇 사람의 의지로 추진될 국민적 동력이 모이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올림픽 특별전을 여는 등 시민 동참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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