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둔 지난 25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3시간 전이었지만 경기장은 이미 삼성라이온즈와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하러 온 팬들로 가득했고, 열기는 경기장 바깥부터 후끈했다.
고조된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상헌(42) 삼성라이온즈 구단의 응원단장이다. 10개 구단 단장 중에서도 삼성라이온즈의 5대 응원단장 김상헌 씨는 그야말로 온몸을 불사르며 팬들과 호흡하기로 유명하다.
김 씨는 응원곡도 직접 만든다. 곡도 직접 만들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니 애정을 듬뿍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모습을 익히 아는 삼성 팬들의 평. 3차전 경기를 앞둔 그를 만나 2000년대 초반부터의 응원 인생을 들어봤다.
-경기장 갈 때마다 응원단장님들은 어떻게 응원단장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는지 정말 궁금했다. 어쩌다 응원단장이 됐나.
▶원래는 춤을 췄다. 장르도 스트리트 댄스 쪽이었다. 백댄서 팀에 들어가 있었는데 IMF 때문에 회사가 사라졌다. 정말 말 그대로 스트리트(길)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실내 연습실이 있다는 팀이 있어 들어갔는데 그게 무용단이었다. 여자 단원들은 치어리더를 하고 남자 단원들은 인형 탈을 쓰고 마스코트를 하는 식이었다. 10년 정도 했다. 그러다 구단에서 마스코트 응원단장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고 대구로 왔다.
-마스코트 응원단장은 좀 생소하다.
▶당시 삼성라이온즈는 독특하게 수컷 사자탈을 쓰고 응원단장 역할을 맡는 캐릭터 애니비가 있었다. 캐릭터 응원단장인데 탈을 쓰고 응원단장의 역할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4대 애니비였다. 이후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로 이뤄진 응원팀으로 바뀌었고 5대 응원단장 김상헌이 됐다. 4, 5대 다 해 먹고 있는 거다.(웃음)
-삼성라이온즈에 들어온 이유는 대구 출신이어서인가?
▶삼성 팬이 아니었다. 야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한다. 마이클 조던 세대여서 시카고 불스를 응원했다.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삼성이 좋아진 케이스다. 응원단 입장에서 경기를 보고 있으면 홈런을 정말 잘 치는 팀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무엇보다 선수를 분석하는 것이 응원단이 하는 일이다. 예컨대 홈런을 잘 치는 선수가 나오면 응원단도 홈런 쳤을 때를 대비한 응원 준비를 동시에 한다. 선수를 알다 보면 자연스럽게 팀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다.
-플레이오프 1차전 때 경기장을 찾았는데 그때 싸이의 챔피언이라는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을 봤다. 노래도 굉장히 잘하시더라.
▶다들 그렇겠지만 초등학교 때 한 번쯤 가수를 꿈꾸지 않나. 나도 그랬던 것이다. 지금은 그냥 방구석 가수다. (웃음) 플레이오프 때 점수가 잘 나왔다. 이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뭐라도 더 하고 싶어서 불렀다. 원래 안 그랬는데 지금은 목이 많이 쉬어서 노래방도 잘 안 간다. 그렇지만 목 쉬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불러야 할 땐 온 힘을 다 해 부른다.
-팬들이 싫어할 수가 없겠다. 팬들과 스킨십을 잘하는 응원단장으로 유명하던데.
▶개인 방송을 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사실 MBTI로 치면 내향형(I)이라 누군가 만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도 유니폼만 입으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팬 서비스 잘 하고 그런다.
-삼성라이온즈의 응원 문화를 많이 바꿔놨다는 평도 듣는다. 그 전과 달리 본인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임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바꾼 게 아니라 팬 분들이 바뀌셨고, 바꾸신 거다. 직접 곡을 만들게 되면서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다. 삼성의 응원곡 '엘도라도'의 저작인격권 사태로 직접 작사 작곡을 하겠다고 구단에 제안했다. 그것도 팬분들 아니었으면 못 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신 분이 제 방송을 보고 도와주겠다고 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
-말씀하신 '엘도라도' 이야기를 이번 시즌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작인격권 시비 때문에 그간 힘든 점도 많았을 텐데.
▶처음부터 엘도라도라는 것이 없었다면 몰랐을 그 노래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긴 했다. 뭘 불러도 임팩트가 없었다. 계속 엘도라도와 비슷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음악을 만들었는데 뭐든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하지 않나. 어쩔 수 없더라.
해외 유명 축구 클럽을 보면 직접 만든 노래가 있다. 그것처럼 우리도 뭐 하나 잘 만들어 놓으면 엘도라도 문제를 딛고 더 좋은 기억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엘도라도를 올 시즌부터 부를 수 있게 됐나.
▶엘도라도 덕분에 올 시즌이 아주 많이 행복했다. 엘도라도를 쓸 수 있게 되면서 정규리그 2위로 마무리 짓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왔지 않았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저작권료를 궁금해하는 팬들도 있다.
▶뭘 막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웃음) 생각보다 많지 않다. 팀이 잘 되면 그만큼 많이 들어주시니까. 팀 성적이랑 비례하는 것 같긴 하다.
-경기 상황이 안 좋을 때는 함께 처지지 않나. 그럴 때 어떤 생각으로 임하나.
▶오로지 팬분들의 텐션을 올려드려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안타만 나와도 팬분들의 기세는 다시 살아날 거기 때문에 안타 하나에도 목숨 걸고 응원한다.
경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는 이상 경기가 안 풀리더라도 안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 좋은 상황이 와도 이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시리즈다.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 아주 길게 달려왔는데.
▶드디어 올해 144번의 전 경기를 뛰어봤다. 144번의 경기 다 뛰어보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였다. 시즌 초반 때 대표이사님이 내게 '잘할 수 있겠나'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한 번도 144경기를 뛰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즌 중간쯤 됐을 때 한 번 더 체크하러 오셔서 '괜찮냐'고 물었다. 그때는 당당히 '쌩쌩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다 했다.
해냈다는 생각에 기쁘다. 지금 내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 나를 보면서 '저런 사람도 하는데 나는 못 하겠나'라는 생각을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발판 삼아 대한민국을 위해서 멋진 사람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응원단장으로서, 그리고 사람 김상헌으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팬들보다 먼저 지치지 않는 응원단장이 되고 싶다. 그다음은 국제 무대에 나가서도 응원단장을 해보고 싶다. 그건 구단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지 않나. 10명의 응원단장분들이 다 출중하지만 그중에서 뽑히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응원단장으로도 활동해 보고 싶다. 나는 늘 경험을 중시한다. 얼마나 경험했느냐에 따라 생각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10개 구단 응원단장 중에 키가 제일 작고 얼굴도 제일 못생겼다. 그런데 나의 움직임을 보고 하나하나 맞춰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다. 잘한다는 평가보다도 그냥 '우리도 응원단장이 있다'고 한 번씩 인정해 주실 때,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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