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꿈꾸는 시] 박언숙 '발가락에 대하여'

경남 합천 출생, 2005년 '애지' 등단
시집 '잠시 캄캄하고 부쩍 가벼워졌다'
제5회 이윤수문학상 수상

박언숙 시인
박언숙 시인 '발가락에 대하여' 관련 이미지. 대구시인협회 제공

〈발가락에 대하여〉

보도블럭 위를 알짱거리는

비둘기 발가락을 무심코 본 후로

종종걸음 멈추고 안쓰럽게 세는 버릇

발가락 하나가 잘리고 없는 놈

그나마 둘 달린 놈

드물지만 한쪽 발가락을 다 잘리고

뒤뚱거려 애 쓰이는 녀석도 보인다

배고픈 날 서대구공단 야적장을 뒤진 모양이다

명줄만큼 질긴 나일론 실에 걸렸을 것이고

올가미에 졸려 질식된 발가락이 말라서 떨어진다

작두에 잘린 할머니 집게손가락이 보인다

겨울이면 그 손가락이 시려 콧김 호호 쐬면서

손발이 성해야 벌어먹기가 수월하다는 넋두리

잠금장치에 갇혀 군말 없던 내 발가락들

곰팡내로 밀폐된 독방살이를 이제는 알겠다

밥벌이에 골몰해 손가락 발가락 내 줄 뻔했던 일

바쁜 걸음 멈추고 비둘기 발가락을 보다가

내 손발의 품삯이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엎드려 꼼지락거리며 경건하게 아는 체해 본다

<시작 노트>

박언숙 시인.
박언숙 시인.

가게 앞에 먹이를 찾아서 날아오는 비둘기가 있었다. 과자부스러기를 던져주었더니 가족인지 친구일지 모를 다른 비둘기들을 데리고 날아오기도 했다. 먹이를 주고 비둘기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윤기가 반들거리는 털에 비해 발가락 잘린 비둘기가 더러 있었다. 하루는 양쪽 발이 줄에 걸려서 걸음걸이가 몹시 불편한 녀석이 보였다. 급히 뜰채로 사로잡아 발목에 걸린 낚싯줄부터 잘라주었다. 낚싯줄에 조인 발가락 두 개는 이미 까맣게 말라붙은 것을 가위로 잘라내 주었다. 그 후부터 물끄러미 나는 내 손과 발가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비둘기들의 발가락을 자꾸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다. 살면서 자주 비둘기 발가락이 나를 긁어댄다. 내 손발의 품삯이 송구스럽다고 깨닫게 해준 그 비둘기를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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