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얼마 전 부산 금정구에 있는 범어사를 찾았다. 지지율이 바닥이어서 마음이 착잡했던 모양이다. 오만과 불통, 위선, 무능 등 눈만 뜨면 갖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터라 힘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서문시장이 아니고 왜 범어사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통령은 기운을 얻기는 커녕 또 곤죽이 되었다. 그의 말 때문이다.
그는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눈앞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제법 '모양 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이 말을 했을 것 같다. 길게 보면서 일을 하고 평가를 받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읽힌다. 과거 어떤 대통령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한 경우도 있었고, 국민과 소통은 하지 않으면서 "역사와 대화하겠다"고 한 대통령도 있었다. 다 그런 뜻이다. 당장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돌을 맞고'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가?'이다. 돌을 맞더라도 대통령이 괜찮은 길을 가는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비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가겠다는 길이 잘못된 방향이라면 난감한 일이다. 지금 윤 대통령이 가겠다는 길이 바로 그렇다. 그는 민심을 거슬러 거꾸로 가고 있다.
임기 절반을 돌아서고 있는 그가 처음부터 하고 싶다는 일은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의료개혁' 네 가지였다. 지금 이 네 가지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고 있는 일이 없다. '의료개혁'은 벼랑 끝에서 의사들과 기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핵심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인데 엉뚱한 데서 멱살잡이하는 격이다.
'노동개혁'을 이끌어야 할 책임자는 임용 과정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노동 관련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한 곳에 모아 타협과 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 노동개혁의 책임자가 되었다.
'교육개혁'은 지리멸렬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정말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다. 중장기 교육 비전을 세우는 국가교육위원회의 문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 드러났다. '연금개혁'은 공 돌리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야당은 지금까지 힘들게 합의한 거라도 제도화해 놓고 추가로 합의를 해 나가자고 주장하는데 정부 여당은 일거에 해치우자는 현실성 떨어지는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우리나라 민주, 자유 가치 지표는 추락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초석이라 할 언론의 자유도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는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 '돌을 맞고' 가겠다는 건 용기가 아니라 오기다.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겠다는 것을 모르는 건 무지다.
대통령 부인 문제로 우리나라 공론의 장이 아수라가 되고 있다. 동 트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는 부인 관련 이야기는 끝을 알 수 없다. 권한을 넘은 부인의 공적 영역 개입과 남편의 무능 소문이 짝을 이루며 국민을 절망의 늪으로 떠밀어 넣고 있다. 급기야 우리나라 굴지의 보수 언론, 조선일보에 실린 한 칼럼은 윤 대통령에게 '나라인가, 아내인가' 하나를 택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우리가 느끼는 절망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최근 보수 언론들이 보수와 대통령의 디커플링을 공공연하게 입에 올리고 있다. 보수진영의 걱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보수 전체가 함께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시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그런 분위기를 입증해 주고 있다.
보수가 길을 잃으면 진보도 길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면 정말 나라 전체가 우왕좌왕 질곡에 빠질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보수의 이념과 비전은 어디로 가고 그 자리를 주술적 예언이 차지하고 있다는 걱정이 늘고 있다. 이것은 진보진영의 비방이 아니라 보수진영 내부의 염려다.
'어디로 가시려는가?' 벌써 떠날 준비를 하는 가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대통령은 정신을 차리고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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