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몇 안 되는 귀한 미술관 중 대구보건대에 위치한 인당뮤지엄은 2007년 박물관으로 개관 이후 2016년부터 명칭을 변경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소개해왔다. 대구에서 진행되는 전시나 새롭게 생겨나는 전시 공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인당뮤지엄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2022년 윤희 작가의 개인전 'non finito'를 보기 위해 처음 미술관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널찍한 전시장의 규모와 작품과 멋지게 어우러지는 공간의 모습에 반해 이곳을 더 일찍 찾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었다.
굵직한 활동을 이어오는 작가들의 기획 초대전을 꾸준히 이어오는 인당뮤지엄에서 현재 최병소 초대전 'now here'가 개최되고 있다.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새까만 선을 뒤덮는 작가로 잘 알려진 최병소는 그 자신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김구림 작가를 언급한다. 김구림의 실험적인 작업들을 통해 예술에 있어 장르나 형태에 한계가 없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하며, 1975년도에 진행된 '한국 실험 작가전'과 '대구현대미술제'에서의 전위적인 작업들을 거쳐 지금의 신문 작업을 시작했다.
작가는 '미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기에 자신의 작품이 현대미술이 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캔버스가 아닌 신문을, 유화물감이 아닌 볼펜과 연필을 선택한 이유도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그의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반복과 수행을 거치는 작업들이 그 가치와 깊이를 작업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수년간 지속하는, 실제로 작가 자신에게 있어 기꺼이 먼 길을 가고자 하는 축적된 시간들이 동반돼야한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긴 시간 지속해온 작가의 작업은 끝없이 반복되고 설치로 확대돼 이어지며 그 자체로서의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당뮤지엄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 'now here'에서는 작가 최병소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현재의 신작까지 총 60여 점의 작품으로 그가 걸어온 예술의 길을 함께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랜 시간 신중히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의 회고전은 관람객에게 매우 친절한 줄거리 요약본이자 다른 무엇이 아닌 작가 그 자신의 세월들에 근거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주기에 꼭 찾아보려 애쓰는 편이다. 작업의 주제와 정체성을 구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작가의 고민'들을 한 곳에서 시대에 따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 작가의 지난 시간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기회다. 새까맣게 덧칠해놓은 화면. 거칠게 찢긴 모습이 암흑 속의 고요한 바다 같기도, 거칠게 자라난 나무의 껍질 같기도 한 이 작품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유명한 걸까? 최병소라는 이름을 들어는 봤지만 그가 해온 무수한 볼펜질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궁금했을 이들에게 지나온 그의 세월을 함께 걸어볼 수 있는 인당뮤지엄의 이번 전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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