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계와 한국

정우태 경제부 기자

정우태 경제부 기자
정우태 경제부 기자'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실리콘밸리는 기술 혁신과 창업 생태계, 미국 경제성장의 엔진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구글,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 인공지능(AI) 시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엔비디아 등 세계를 흔드는 기업들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실리콘밸리라는 지명을 들으면 IT 산업과 소프트웨어를 떠올리겠지만 어원을 보면 반도체와 깊은 연관을 지닌다. 실리콘을 원료로 하는 둥근 모양의 웨이퍼는 반도체 제조의 첫 단계다.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빅 테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년 수십만 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절반 이상은 사라진다. 성공하는 기업은 극소수이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사업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도체는 창업자들의 꿈을 실현하는 필수 요소다. 반도체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구현한 창조적인 기업인들은 미국이 세계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세계로 영역을 넓혔다. 유럽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 설계 부문에서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을 쌓았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정부의 주도 아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기반을 구축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반도체 동맹에 속한 한국은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 한때 일본이 제패한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왔다. 메모리 분야 1·2위 기업이 한국에 있고 두 기업의 점유율을 합산해서 보면 세계시장 3분의 2를 독식하는 구조다.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의 수출 효자 품목은 단연 반도체다. 지난해 메모리 업황 부진을 겪으면서 수출 마이너스 기록이 이어졌으나, 올해 들어 관련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수출 신기록 경신을 넘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5대 수출국의 반열에 입성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는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이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현재 우위를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세계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반도체 동맹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미국은 중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하는 건 대만, 일본에 지진을 일으키는 대륙판의 충돌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충돌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 불거진 삼성전자 위기론으로 경제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AI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후발 주자의 추격을 허락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앞서가는 TSMC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공룡으로 불리던 인텔의 추락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며 중장기적 성장을 이끌던 삼성전자가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문제가 복잡할 때 처음을 생각하면 의외로 쉬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초심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발표하는 '도쿄선언'에서 "한국은 원자재는 부족하지만 교육받고 근면한 인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한 말이다. 반도체 강국 한국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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