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추위가 그리웠던, 더위로 정신없이 뜨거웠던 여름이 드디어 갔다. 그리고 선선함도 잠깐, 추석 이후 한 달여 만에 밤은 차갑기만 하다. 지난 9월 5일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출구에서 어느 시인의 표지석 제막식이 있었다. 그가 출생한 9월에 그를 기리는 행사였다. 또한 날씨의 변덕이 심한 이때, 우리는 한강 작가의 낭보를 들었다. 그녀의 노벨상 수상으로 문학과 관련이 있든 없든,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축하와 기쁨으로 축제의 장이 되었다.
그쯤, 경북 칠곡에서 '칠곡낙동강평화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축제는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전투 지역인 칠곡에서 당시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나라를 지켜낸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의미의 뜻깊은 행사다. 문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죽음이 실려 나가고 그러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즐거울까요"라던 한강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쁨보다, 먼 이국의 슬픔을 먼저 어루만질 수 있는 마음이라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와중에도 이스라엘 전쟁은 휴전을 논의 중이긴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전쟁은 평화로 가기 위한 필요적 조건이 아님에도, 전쟁 후에야 평화가 깃든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반갑게도 전투가 치열했던, 경북 칠곡에는 앞서 말한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다. 계절이 더욱 깊어져서, 이젠 서슬 퍼런 밤이 때때로 차거운 무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칠곡 낙동강 방어선. 이 강을 걷고 바라보며 오래 머물렀을 시인, 그리고 그가 떠난 후에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 20여 년째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인근에 칠곡보가 만들어지고, 일대에 칠곡보생태공원과 호국을 주제로 한 호국공원이 들어섰다. 지난 9월에 서울서 열린 행사는 다름 아닌, 구상 시인(세례명 세례자 요한, 1919~2004, 본명 구상준)을 기념하는 '구상 시인길' 명예도로 표지석 제막식이었다. 구상 시인은 한국전쟁 당시 마해송, 박목월, 유치환, 조지훈 등과 함께 종군작가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종전 이후인 1953년부터는 왜관에 정착하여, 이곳에서 20여 년간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인생 중반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전쟁 후에 평화를 지켜왔던 셈이다.
칠곡군은 지난 10월 초에 '평화를 잇다'라는 주제로 제11회 '칠곡낙동강평화축제'를 열었다. 폐막 이후 칠곡군은 3일간 칠곡보생태공원과 왜관 원도심에서 열린 축제에 약 30여만 명이 찾았다고 밝혔다. 구상 시인에게 칠곡은 전쟁의 상흔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자, 구상 문학의 시발점 그리고 어쩌면 그의 인생 전부이기도 했다. '강(江)의 시인'으로 불리는 구상 시인의 딸인 구자명 소설가는 한 신문사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왜관수도원을 친정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곳에 어머니 병원이 있었고, 묘역 건너편 낙동강 생태공원과 마주 보는 곳에 아버지 시비가 있다."고 했다. 오늘날 '칠곡낙동강평화축제'는 많은 이들의 애정과 노력으로 더욱 빛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축제가 되었다. 10회가 지난 이즈음에 한강 작가의 말처럼, 또 구상 시인이 걸어왔던 삶처럼 문학과 평화축제를 함께 고민해 보면 어떨까.
몇 해 전부터 각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책 관련 축제와 북페스티벌을 열고 있으며, 목포와 전주는 전국 단위의 북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에는 작은 축제에도 책과 연관 짓고 있으며,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독서 인증 열풍이 불고 있다. 칠곡군에서도 지역 책방과 함께하는 행사를 연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곳에 '구상'은 없었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지역적 특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구상 시인과 칠곡 낙동강 방어선을 보유한 칠곡 아닌가. 이미 존재 자체만으로도 칠곡만의 강점이자 특색을 갖춘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칠곡낙동강평화축제'와 연계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획할 필요가 있다. 둘을 연계한 문화콘텐츠로 축제를 준비한다면, 여타의 지자체를 뛰어넘는 아주 특색이 있고 의미 있는 2025년 제12회 '칠곡낙동강평화축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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