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를 채운다는 건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이 포함된다. 멈추지 않는 지속을 위한 준비와도 같아서 육신의 에너지 외에 정신을 받쳐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배고픔을 채운 후 든든하게 떠받드는 이 기분은 뭐랄까. 마치 양식을 비축해 두는 것처럼 안정감을 느끼게 하지만, 반대로 끼니를 거르면 온 기운이 빠져나가는 심정이 되곤 한다.
밥 한 끼로 심신을 채워 아침을 세운다. 변변찮은 찬이라도 뜨끈한 밥 한 공기면 온몸이 데워지는 마법의 불씨 같다. 어릴 적 솥단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밥 향은 식욕을 돋웠다. 새벽부터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정성껏 불 조절하며 가족의 끼니를 준비하셨다. 밥 짓는 소리에 모두가 잠에서 깨면 밥 내음에 이끌려 밥상에 둘러앉았다. 마치 새날을 맞는 의식을 펼치듯 그렇게 하루를 열었다.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작업화가 제일 먼저 자리를 뜨면 다음으로 오빠와 언니들 운동화가 서둘러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막내였던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돌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이 모든 상황을 할머니께서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속을 채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환하게 동이 튼 후에야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 앉아 밥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내게는 언제나 노릇하게 눌린 누룽지 한 뭉치가 덤으로 주어졌다.
집밥의 의미는 집을 나서는 이를 향한 응원이고 격려다. 식사로 자신을 성원하며 최고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과 같다. 어떤 면에서는 먹는다는 거 이상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내어준 사람의 정성이 힘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식재료가 달라지고 음식 온도나 조리법을 바꿔 몸을 조절하기도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 속에서 자신에게 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 역시 일상에서 나를 세워가는 방법의 하나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눈만 뜨면 세상을 향해 나가기에 급급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데 간편식마저 스쳐 지날 때가 흔하다. 매일 걷고 또 걸으며 앞을 향하면서도 때론 생각지 못한 좌절에 밥맛을 잃기도 한다. 간혹 뜻한 일이 순조로울 때면 기분 좋게 밥 한 숟갈을 뜬다. 매일 섭취하는 밥심의 위력은 보이지 않는 내일을 위한 노력처럼 중요한 순간에 최선의 몰입을 높인다. 다음을 기약하려면 허기를 채워야 한다.
지난 아침의 의식에는 밥 한 공기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몇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던 부모님의 손길이 이제야 그립고 이해된다. 어쩌면 그 잔상이 지금껏 내 몸을 휘감으며 하루를 뜨겁게 타오르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침을 비우고 점심을 건너 저녁을 그냥 잠재우면 이대로 멈출 수 있다. 해가 지면 새날이 오듯, 지속하고 싶다면 속을 채워 움직여야 한다.
댓글 많은 뉴스
유승민 "이재명 유죄, 국민이 尹 부부는 떳떳하냐 묻는다…정신 차려라"
"촉법인데 어쩌라고"…초등생 폭행하고 담배로 지진 중학생들
이재명 사면초가 속…'고양이와 뽀뽀' 사진 올린 문재인
"고의로 카드뮴 유출" 혐의 영풍 석포제련소 전현직 임직원 1심 무죄
대구경북 대학생들 "행정통합, 청년과 고향을 위해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