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정당 이름에 힘이 넘치지만 실제로는 별 힘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힘이 넘친다. 근래 정치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자면 '국민의힘'이 아니라 '한동훈의 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대표는 여야를 넘나들며 적·아군을 가리지 않고 이슈를 생산하는 힘을 가졌다.
◆ 불편부당한 정치가
한동훈 대표는 한국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사람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이지만 그의 언행에 당파성(黨派性)이나 당리당략(黨利黨略)은 없다. 국민의힘 대표인 그가 야당이나 할 법한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것이나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서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가 야당과 일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넓은 마음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까?
지난 4·10 총선 당시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들(도태우·장예찬)의 과거 발언에 대해 야당과 친야권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공격하자 방어하거나 해명하는 대신 도태우·장예찬의 공천을 취소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당파성이 없는 만큼 그는 자유우파 국민을 위한다거나, 자신이 속한 정당을 위한다거나, 여당 대표로서 윤석열 정부를 위한다는 '진영 논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남다른 애민정신 가져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놓으라는 말인데,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고, 검사로 출발해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음에도 법률 전문가로서의 입장이나 견해를 내세우지 않고, 국민의 요구에 맞추려는 넓은 포용성(包容性)을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국민이 기소하라'고 하면 혐의(嫌疑) 유무와 별개로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포용력이 클수도 있겠다.
한 대표가 여당 대표로서 대통령 독대나 대통령실 인적 쇄신 등 물밑으로 조용히 접근해야 될 사안을 굳이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 역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는 애민정신(愛民精神)에서 나온 것일게다.
◆권력·자리 욕심 없어
한동훈 대표는 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힘든 싸움을 혼자 감당했다. 3명의 공동선대위원장(나경원, 원희룡, 안철수)이 있었지만 그들은 각자 지역구에 묶여 있었다.
삼국지에서 조조, 유비 같은 걸출한 지장(智將)과 덕장(德將)들도 하후돈, 서황, 관우, 장비와 같은 당대 명장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실상 '원톱'으로 민주당의 이재명·이해찬·김부겸에 맞서 싸웠다.
총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역구 유세를 안 해도 이길 인천 계양구을에 출마했고, 이해찬, 김부겸은 출마하지 않아 각자 지역을 나눠 전국을 누빌 수 있었다.
혹자들은 한 대표가 총선 승리의 공(功)을 독차지하려는 '꼼수'를 부렸다가 총선에서 패했다고 혹평하지만, 한 대표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가 이미 밝혔듯이 '자신은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욕심이 없다는 것은 지난 총선 때 국회 의원 배지를 탐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총선 패배 직후 금방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것을 보면 자리 욕심이야 모르겠지만 얌통머리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야당에 영향력 큰 여당 대표
한동훈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이지만 야당인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영향력이 아주 크다. 대통령실을 공격함으로써 야당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야당보다 더 매몰차게 대통령실을 때려 야당이 시간과 수고를 덜도록 배려해준다.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권 인사들의 의혹에 대해 말을 아낌으로써 그들의 평안한 일상을 돕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혁신당 대표의 지지부진한 재판 속도에 대해서도, 늘어지고 있는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사건 재판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그래서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같은 인물이 국회 의원을 오래오래 해먹도록 배려해준다. 사실 한 대표가 법무장관 시절 다른 마음만 먹었다면 이재명, 조국, 황운하,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은 지금 쯤 다른 신분이 돼 있을 수도 있다. 한 대표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야당 지도자들의 신분보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무엇보다 한 대표는 '내부총질'로 끊임없이 국민의힘 지지도를 떨어뜨림으로써, 그 반사이익으로 민주당이 지지율이 오르는데 크게 기여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높은 지지율을 그저 얻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는 한 대표에게 감사장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줘야 한다. 탁월한 위조 전문가가 있으니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투철한 다수결주의자
하나의 정치적 쟁점, 국가적 문제일지라도 지지 정당에 따라 국민들의 평가나 판단은 다를 때가 많다. 가령,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이재명 대표 위증교사 논란 등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지지 정당에 따라 다른 입장을 표명하곤 한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10·16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국민의힘을 향해 "너희들 지금 뭐 하고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은 "너희들이 지금 집안싸움 할 때냐"는 말인 데, 친한(친한동훈)계 의원은 "여러 지지율(하락 추세)을 보면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잠재우고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나 당원 열망이 크다"고 해석했다.
108석을 준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함에도 한 대표와 친한계는 192석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겨우 12석을 갖고도 원내 제3당이라며 온갖 말을 다 쏟아내지만, 108석의 한동훈 대표와 친한계 인사들은 매우 겸손하다. 다수결에 천착하는 모양새다.
◆이준석을 묻어버렸다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실을 야무지게 공격하자, 평소 온동네 일 다 간섭하며 감놔라, 배놔라 하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조용하다.
이준석 의원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대선 승리 비책'이라며 비단주머니를 건넸다. 그러면서 자신이 마치 삼국지의 제갈량이라도 되는냥 '급할 때마다 하나씩 열면 공격을 충분히 받아치고 역효과까지 상대편에게 넘길 수 있는 해법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는 다 알고 있으며,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이었다.
이처럼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크니 그의 말은 '대화'가 아니라 '설교'나 '평가' '훈계'로 흐르기 십상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개고기·양두구육·신군부' 같은 독설(毒舌)이었다.
그런데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실을 향해 끝없이 잔소리와 훈계를 늘어놓으니 이준석 의원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이준석 의원과 이재명 대표가 때릴 걸 한동훈 대표가 때리니 이준석 의원도 이재명 대표도 별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여당 대표이면서 야당이 할 일까지 다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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