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 위주로 퍼지던 '숏' 문화가 이제는 연극, 영화 등 문화 저변에 퍼졌다. 관람하는 데 2시간은 필요했던 연극과 영화를 10분, 15분으로 짧게 누릴 수 있다.
여행도 짧게 간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왔는데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 이들이 가성비 있게 다녀올 수 있는 '퀵턴 여행'이 2030 세대를 사로잡은 것.
효율적이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숏' 문화생활. 가성비와 시성비가 중요한 현대인을 위해 주말& 팀이 대신 체험해봤다.
◆바쁜 현대사회, 15분 연극·10분 영화 어때?
지난 25일 대구 남구 대명동 한 카페에 모인 주말& 팀. 왜 모였냐고? 커피를 마시려고 모인 건 아니고, 이곳에서 15분짜리 연극을 하기 때문! 한 번 보려면 기본 한 시간 반은 소요되는 연극인데 겨우 15분이라니. 이따 다른 취재 약속 있는데, 문화생활하고 갈 수 있겠네?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아니 근데 여기가 연극을 하는 장소 맞아? 일반 카페에다가 무대도 없어서 장소를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카페 알바생에게 "여기가 연극하는 곳 맞아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지, 뭐람. 자세히 보니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게 손님이 아니라 배우였다. 테라스가 무대인 셈이고 행인이 지나가는 인도 폭 정도가 객석과 무대의 거리인 셈.
주말& 팀이 보게 된 연극 '대명동 스낵극'은 실제 상점 4곳에서 주민들의 점심시간과 학생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15분 길이로 진행하는 짧은 연극이다. 대명2, 3동 상인과 극단이 협력해 실제 상점 공간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시간에 짧은 창작극을 관람할 수 있다.
무대와 거리가 가까우니 배우의 표정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다 보인다는 것이 이 스낵극의 특징이다. 그러니 연극 내용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15분의 짧은 연극이라는 사실을 홀라당 잊고 푹 빠져서 연극을 보다가 주변을 살피니… 곳곳에 갈 길 가던 행인들이 멈춰서 연극을 보는 풍경도 펼쳐졌다.
연극이 끝나고 시간이 남은 주말& 팀. 대구 중구의 한 영화관으로 향했다. 글쎄, 이번에는 영화 상영시간이 겨우 10분도 안 된다지 뭐야. 주말& 팀이 볼 영화는 CGV가 티켓 가격 1천원에 상영하는 8분짜리 애니메이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이다.
극장가는 짧은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들의 개봉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CGV는 지난 6월에도 13분짜리 단편 영화 <밤낚시>를 1천원에 상영한 바 있는데 관객 4만6천423명을 모았다. 롯데시네마도 다음 달 1일 러닝타임이 4분 44초인 영화의 개봉을 앞뒀다.
다음은 애니메이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을 본 주말& 팀의 후기.
"영화는 '악연의 시작'이라는 부제처럼 주인공들이 악연으로 얽히게 된 배경에 주목하고 끝나. 조금, 아주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마침 주변에 볼 일이 있었기에 오히려 짧고 산뜻하게 문화생활을 즐긴 느낌! 티켓이 심지어 1천원이라니. 나 포인트로만 결제했잖아. 뜻밖의 이득..?" (이 기자)
"보통 문화생활이라고 하면 시간을 내서 향유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동반되잖아. 현실의 일들이 바쁘면 문화생활에 쓸 시간도 같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하지만 이렇게 큰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문화생활을 삶 사이 사이에 끼워 넣어놓으니 부담도 없고 환기가 되는 것 같아. 영화 볼 때 필수 먹거리인 팝콘을 절반도 안 먹었는데 끝나버린 건 조금 아쉬워. 8분 영화용 간식이 있으면 좋겠는걸?" (최 기자)
"나도 영화 볼 때 마시려고 뜨거운 커피를 들고 들어갔는데 입에 대지도 못했어. 이거 봐, 커피가 아직도 뜨겁다구. 집에 가서 마셔야겠어. 아니 영화 러닝타임이 8분인데, 광고만 10분이야. 이게 맞아…? 짧은 영화에는 광고 시간을 좀 줄여주면 좋겠어. 영화는 너무 재밌었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또 볼 거 같아. 아, 근데 이 찝찝한 기분은 뭘까. 뭔가 하다 만 거 같잖아. 다른 영화는 또 뭐 있는지 영화 스케줄표 좀 봐야겠어." (한 기자)
◆숏 문화가 여행에도…'퀵턴 여행' 활발
'숏' 문화 생활은 효율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2030 세대에게 큰 매력이다. 효율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든 짧고 빠르게 소비하는 문화는 연극, 영화를 넘어 여행에까지 퍼졌다. 여행도 짧게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용어도 있다. 바로 '퀵턴 여행'. 퀵턴은 항공 승무원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 목적지에 도착한 뒤 곧바로 다시 출발하는 일정을 뜻한다. 당일치기 여행객 사이에서 이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대구에 사는 20대 A씨는 최근 친구들과 대전으로 퀵턴 여행을 떠났다. 나고 자란 대구에 있는 친구들과 학업과 직장 때문에 상경한 친구들이 만나기 가장 적절한 장소를 고민하다가 중간 지점인 대전으로 골랐다.
A씨는 "각자의 일들이 점점 바빠져 이제는 주말 이틀을 할애해 숙박하고 오는 여행도 피곤하게 느껴지면서 당일치기 만남을 선호하게 됐다. 그런 우리에게 대전은 좋은 여행지이자 모임지"라며 "1년에 3~4번은 대전을 찾아서 이곳의 사계절을 다 보고 올 정도"라고 전했다.
이처럼 퀵턴 여행의 장점은 시간과 비용 효율성이다. 당일치기 여행인 만큼 직장인의 경우 휴가를 길게 낼 필요가 없이 짧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대표적인 퀵턴 여행지가 대전, 강릉, 춘천, 부산 등인 것도 이 점과 맞닿아있다. 모두 관광 특화 지역으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은데다 접근성이 편리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전 역시 한때 노잼도시라 불리기도 했지만 최근엔 그 평가를 역이용해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빵축제, 꿈돌이를 활용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A씨는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성심당 외에도 두부두루치기, 소국밥 같은 든든한 음식이 많다"며 "탁 트여있어 자전거를 타거나 쉬기에 좋았던 한밭 수목원은 매번 대전에 갈 때마다 찾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뭐든 빠르고 짧아지는 시대
MZ세대인 2030세대가 이끌기 시작했던 숏 문화는 이제 대중의 생활 저변에 퍼져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는 숏폼 이용 행태와 영향력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 20~60대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미디어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최근 1주일 동안 숏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이용자가 94.3%로, 응답자 대부분이 숏폼을 이용하고 있었다. 또 숏폼을 매일 이용한다고 답한 사람은 52.2%로 가장 많았다.
숏 콘텐츠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영상 플랫폼을 넘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주인이 소개하는 물건을 사는 '숏핑(숏+쇼핑)', 웹툰과 드라마 등을 짧게 요약해 주는 '숏툰(숏+웹툰)', '숏드(숏+드라마)' 등이 그러하다.
일각에서는 내용이 빠르게 전환되는 특징 탓에 장기적으로는 집중력, 주의력 등의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빠르고 짧은 단순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되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러나 빠르고 짧게 소비하는 문화가 문화 향유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앞서 CGV는 지난 6월 상영한 13분 짜리 단편영화 <밤낚시>를 관람한 관객의 19%가 다른 영화도 함께 관람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놨다. 숏폼 영화 관람이 일반 영화 관람으로 이어졌다는 것.
책 내용을 재가공해 15분 분량의 콘텐츠로 요약해서 대화 메시지처럼 보여주는 서비스인 숏독 서비스를 도입한 밀리의서재 역시 "숏독 콘텐츠가 독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소설과 수필류는 물론이고 경제경영, 인문철학서까지 분야를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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