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가 국회로 갔다. 덕분에 아이돌을 모르던 사람도 뉴진스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멤버 중 한 명의 이름이 '하니'라는 상세 정보까지 습득했다. 그렇게 K팝의 중심이던 하니는 일약 시사의 중심이 되었다.
먼저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하니에게 국감장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하니는 "복도에서 마주친 하이브의 다른 레이블 소속 매니저가 자신들(뉴진스)을 대놓고 무시한 적이 있어서"라고 했다. 내용을 간추리면 그렇다. 그리고 "몇몇 높은 분들이 인사를 해도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다"라는 보충 답변도 했다.
이어서 환노위의 한 여당 위원이 "나한테 월급 주는 사장이 누군지, 어느 회사가 내 회사인지 명확하게 인지를 하고 회사를 다녔습니까?"라고 물었다. K팝과 음반시장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질문이었겠지만 좀 무례해 보였다. 하니는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는 성인이고 세계적인 기획사에 소속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하니가 죄송해 했고 사람들은 웃었다.
그리고 하니는 회사가 자신들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도 했다. 그러다 끝에 가선 눈물을 보였다. 환노위의 위원들은 그런 하니를 따뜻하게 위로하며 격려했다. 그들은 모두가 하니의 편이었다.한 야당 위원은 하니를 보고 울컥했다며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목소리를 낸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감격해 했다. 그들에게 하이브의 방시혁은 악덕 자본가, 하니는 억압받는 노동자였다.
기실 하니가 참고인 자격으로 국감장에 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도어의 김주영 신임 대표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증인으로 불려 나왔다. 그리고 고용노동부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내내 질책을 당했다. '당신들이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노동자인 하니가 이렇게 힘든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것이 요지였다.
하지만 진실로 그곳에서 근로자성이 가장 약한 사람이 하니였다. 하이브에는 근무하는 직원이 있고 하니처럼 쌍방이 합의 하에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가 있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YH무역의 여공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시대가 아니고 가수 지오디(GOD)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도 아니다. 하니가 국회로 가져온 민원은 고용노동부의 소관 업무가 아니었다. 그건 뉴진스와 어도어, 민희진과 하이브 그들 내부의 문제이고 그들끼리 해결할 일이었다.
K팝의 영역으로 돌아와서 보면 뉴진스는 뭘 대놓고 티 내는 게 없는 그룹이다. 블랙핑크처럼 압도적이지 않고 광야를 걸어가는 에스파처럼 웅장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더 청순해 보이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논다. 그 모습 그대로 잠시 밖으로 나온 듯한 게 그들의 퍼포먼스다. 어찌 보면 그렇다. 와서 보려면 보고 즐거우면 따라 즐기라는 식이다.
그들의 춤에는 대한민국 아이돌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이른바 '칼 각', '칼 군무'가 없다. 또한 놀랍게도 그들의 노래에는 하이라이트 구간이 없다. 뉴진스는 힘들여 고음을 내지르지 않고 필요 이상 격렬해지지도 않는다. 그저 매우 '힙'하고 '쿨'한 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게 통했다. 데뷔 1년 만에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런 뉴진스의 하니가 '격렬하게도' 국회로 가려 했을 때 옆에 있던 하니보다 더 어른인 사람들이 말렸어야 했다. 현재의 뉴진스가 있기까진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의 열정과 창의성도 있었지만 하이브의 막대한 투자도 있었음을 상기시켜 줬어야 했다. 뉴진스에게 커스텀 유니폼을 선물한 미국 프로농구팀 시카고 불스는 마이클 조던이 전성기를 보낸 팀이다. 당시 필 모리스 감독이 해고당할 때 마이클 조던은 분개했지만 그래도 뉴진스처럼 구단에 최후 통첩 같은 것을 날리지는 않았다.
BBC, 뉴욕타임스, 로이터 통신 등이 하니의 국감 출석에 맞춰 엄격한 통제, 고압적 서사 등 오리엔탈리즘과 편견에 기반한 추측성 기사들을 쏟아 냈다. 이번 일이 그들의 오래된 색안경에 덧칠을 한 셈이다. 국회는 하니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고 하니는 국회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로 인해 반도체보다 잘 나간다던 K팝 콘텐츠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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