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향래의 소야정담(小夜情談)] 영일만 친구, 오세영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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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낭만가객 최백호의 가요 '영일만 친구'를 들으면 노랫말 그대로 가슴이 뛴다.

파도처럼 역동적인 리듬 때문만은 아니다. 영일만에서 벌어진 민족의 대역사 때문에 그렇고, 영일만에서 꿈을 키우고 이루어낸 사람들의 원대한 신화가 떠올라서 그렇다. 50년 전 영일만 허허벌판에 제철소를 세운다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이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나라에서 철강을 만드는 용광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몽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영일만의 기적'은 현실화되었다.

영일만 모래밭에 제철소 건립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후인 1973년 6월 9일 아침 포항제철 제1고로에서 황금빛 쇳물이 쏟아졌다. 우리나라가 공업 입국과 수출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위대한 서막이었다. 산업의 기초 소재인 철강을 생산하면서 영일만은 제철공업단지로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자동차와 선박과 전자산업 등을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시킨 미증유의 역사는 그렇게 영일만에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어올린 영일만 신화는 박태준이라는 주역과 박정희라는 감독이 있어서 가능했다. 당시 박태준 회장은 포항제철 임직원들에게 "조상의 혈세(대일청구권자금)로 짓는 제철소가 안 되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다. 이른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정신 무장이었다. 그래서 포항제철 없는 한국의 산업화가 있을 수 없었고, 박태준 없는 포항제철도 있을 수 없었다.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한창 열기를 더해 가던 시절, 먼바다를 바라보며 또 다른 신화를 그린 영일만 친구가 있다. 맨주먹으로 동남아 굴지의 기업을 이룬 오세영 코라오홀딩스 회장이다.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오세영은 갯비린내 물큰한 영일만이 그냥 바다가 아니었다. 저만치 호미곶 너머 먼 바닷물이 내 안에서도 출렁거렸다. 짓푸른 파도가 더 넓은 세상을 노래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오세영은 대기업에서 해외무역 업무를 익히면서 가슴속에 꿈틀대는 대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27세에 사표를 던지고 베트남 봉제 수출에 도전했으나 현지 동업자의 배신으로 고배를 마셨다. 한국의 중고차를 수입해 베트남에 판매하는 두 번째 사업도 한 시절의 영화로 막을 내려야 했다. 베트남 정부의 수입 금지 정책이 길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빈털터리로 찾아간 곳이 라오스였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가난한 나라에서 코라오(KOLAO)를 창업했다. 포항제철의 불빛을 안고 일렁거리던 영일만의 웅혼한 기상을 내륙국가에서 펼친 것이다. 라오스가 오세영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라오스의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되었다. 라오스는 블루오션이었다. 중고차 수입 판매가 트럭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오세영은 '라오스의 정주영'이 되었다.

한상(韓商)기업 동남아 성공 신화의 서곡이었다. 코라오는 라오스 1등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제조는 물론 금융, 건설, 물류, 유통, 레저, 미디어 등의 사업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코라오의 큰 물결은 21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너울처럼 동서남북 국경을 넘었다. 베트남과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도 공장을 세우며 기업명을 인근 국가의 영문 이름 앞자를 딴 'LVMC'로 바꿨다.

영일만에서 꿈꾸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실현한 초유의 신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제 국가별‧도시별 특성에 맞는 코라오 스마트 복합 미래형 신도시 건설로 나아가고 있다. 남들이 등한시한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읽고 세계적인 위업을 이룩한, 구룡포 과메기와 막걸리가 그리운 영일만 친구! 그가 이끄는 코라오 함대는 오늘도 지구촌을 누빈다. 그 장대한 항해의 원동력은 영일만 갯바람이다.

바다 끝에서 파도가 품고 온 갯바람의 노래는 밤바다 집어등이 찬란한 지평선 너머로 이끈 세레나데였고, 만리타국의 시린 세월을 견디며 다시 열정을 지피게 한 부적이었다.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洶湧)한 육지를 항행(航行)한다, 내 파이프 자욱이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남저음(男低音)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 단위는 '인생'이란 중량(重量)."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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