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960~70년대 그룹사운드 붐 이끈 히식스 베이시스트 조용남 별세

신중현밴드서 음악 활동 시작…"한국 록 저변 확대·대중화 기여"

1960~70년대 그룹사운드 히파이브(He5)와 히식스(He6)의 베이시스트 조용남이 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연합뉴스
1960~70년대 그룹사운드 히파이브(He5)와 히식스(He6)의 베이시스트 조용남이 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연합뉴스
히파이브
히파이브 '정주고 내가 우네' 음반. 맨 아래 안경 쓴 인물이 조용남이다. 연합뉴스

1960~70년대 그룹사운드 히파이브(He5)와 히식스(He6)의 베이시스트 조용남이 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에 따르면 조용남은 이날 0시 40분께 세상을 떠났다.

1947년 1월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난 고인은 월남 후 고교 시절 신중현밴드의 멤버로 미8군 무대에 오르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67년 미8군쇼 공급회사 '화양'의 쇼밴드 가운데 다섯 명을 뽑아 결성된 히파이브 멤버가 됐다. 히파이브라는 이름은 당시 미국의 5인조 여성 밴드 '쉬파이브'(She5)가 미군 위문 공연차 내한했을 때 멤버 유영춘이 이를 따라 지은 것이다.

당시 히파이브의 멤버는 조용남을 비롯해 유영춘, 한웅, 한광수, 김용호였다.

히파이브 멤버 다섯 명은 조용남의 집에서 약 2개월간 연습한 뒤 본격적인 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광수가 입대하면서, 김홍탁이 그 자리를 채웠다.

히파이브는 '초원'을 비롯해 '정 주고 내가 우네', '메아리' 등의 히트곡을 냈다. 이후 멤버를 보강해 히식스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갔다.

히식스는 팀을 재편한 뒤 발매한 1집 타이틀곡 '초원의 사랑'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은 1970∼71년 플레이보이컵 쟁탈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2회 연속 최우수상(대상에 해당)을 거머쥐는 등 최고의 그룹으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이후 '초원의 빛', '물새의 노래', '당신은 몰라', '사랑의 상처'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조용남은 2017년 서울 대학로에서 '히파이브-히식스 결성 50주년 기념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는 생전 그룹사운드 1세대 모임인 '예우회' 회원으로, 해마다 예우회가 주최한 연말 자선공연 무대에도 꾸준히 올랐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조용남은 평생 기타와 함께하며 1960년대 그룹사운드 붐을 이끈 록그룹 1세대"라며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록을 구가하며 우리나라 록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화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30분이다. ☎ 02-3410-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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