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정된 시간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고민하고 본능과 목적에 따라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타인과 연결돼 서로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고자 함은 죽음을 인지함으로써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상과 경험을 공유하며 애정을 주고받았던 대상의 죽음은 단절과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새로운 현실과 직면해 깊고 복잡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국내에서는 배우 김수미의 사망 소식에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5주년, 가수 신해철 사망 10주년, 이태원 참사 2주년까지 사회 곳곳에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소중한 존재를 기억하고 기리며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염원은 고인의 사회적 지위나 업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표현된다.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심오한 주제인 죽음은 생과 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고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하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작품의 성격과 표현의 방식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에 사용되는 가톨릭의 전례음악인 '레퀴엠(Requiem)'에서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뿜어내는 격렬한 힘과 압도적인 분위기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진노의 날(Dies irae)'을 통해 죄의 무게와 심판의 두려움, 구원에 대한 갈망을 죽음의 이미지로 묘사한 반면,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는 극적인 성격을 띤 '진노의 날'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작품 전체에 걸쳐 온화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유지하며 평화와 안식에 이르는 과정으로써 죽음을 해석하고 있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죽음에 대한 성찰과 자신의 신념을 작품에 담아냈으며 인간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접근으로 남겨진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희망과 위로를 전한다. 큰 성공을 거둔 브람스의 레퀴엠은 가톨릭의 전례에 따라 라틴어로 된 통상문과 고유문을 가사로 사용하는 기존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종교개혁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에서 자신이 직접 선별한 구절을 조합해 구성함으로써 전례음악이 아닌 연주회용 작품으로 분류되며 '독일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Op. 45)'으로 불리게 된다.
삶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과 정체성은 묘비에 기록되기도 한다. 러시아의 작곡가 시닛케(Alfred Schnitke, 1934~1998)의 묘비에는 음자리표, 조표, 박자표, 세로줄 등 마땅히 있어야 할 악보의 구성요소가 모조리 생략된 오선보에 늘임표와 포르티시시모(fff)로 지시된 온쉼표가 새겨져 있다. 마치 죽음으로 삶의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처음과 끝의 구분도 없이 길게, 그리고 최대한으로 온전한 휴식을 누리고 있음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듯하다. 생전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가수 신해철의 묘비에는 유족들의 뜻으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담은 그의 노래 'Here, I Stand For You'의 가사가 새겨졌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개념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이어진다.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생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겨 삶을 귀하게 가꿔야 한다. 죽음 뒤에도 우리는 생전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다시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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