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 이쯤에서 사과 받아줘야

황태순 정치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어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무제한 끝장 기자회견'이 있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 그리고 정치브로커 명태균과 관련한 각종 의문점들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야당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회견이라고 날을 세운다. 여당은 대통령이 진솔하게 국민께 사과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최종 심판은 국민이다. 다음 주 여론조사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두 달 가까이 한국의 정치는 명태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용산은 우물쭈물하면서 시간만 가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드디어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 대통령과 명태균 간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보수 진영은 참담하다 못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내년부터 트럼프 발 '외교-통상-안보'의 삼각 파도가 예상된다. 당장 방위비 분담금부터 시작해서 우리 경제의 생명줄인 대미통상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그 어느 때보다 범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긴요한 때다. 그렇기에 언제까지 명태균-김건희의 늪에 빠져 소모적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물고 있는 먹이를 결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지렛대로 윤석열 정부를 더욱 더 옥죄려 든다. 그와 함께 지난 2일부터 시작한 장외집회의 강도 또한 계속 높여갈 기세다. 처음에는 "(윤 대통령을)그냥 끌어내려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구체적으로 '대통령 임기 2년 단축 개헌' 아이디어를 공론화 시키고 있다.

사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2027년 3월 대선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당장 이달 15일(공직선거법)과 25일(위증교사)에 각각 1심 판결이 내려진다. 현재로서는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2심인 항소심 재판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2026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이재명에게는 '악몽' 그 자체다.

이재명은 '사법 리스크' 극복의 돌파구를 '조기 대선'에서 찾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①대통령 탄핵 ②임기 단축 개헌 ③자진 하야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탄핵은 탄핵소추는 몰라도 헌재에서 탄핵 결정을 받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현직 대통령 임기 단축'을 골자로 개헌하자고 했다가는 엄청난 역풍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남은 가장 손쉬운 방안은 다름 아닌 '자진 하야'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이다. 대선 전에 쥴리 의혹부터 학력 위조 의혹까지 결정적 순간마다 발목을 잡았다. 취임 후에는 디올백 문제로, 드디어는 공천 개입 의혹의 당사자가 됐다. 윤 대통령과 명태균 간의 통화도 그 본질은 김건희 여사의 '베개 밑 송사'다. 민주당과 이재명은 윤석열의 '약한 고리' 김건희를 계속 공격함으로써 윤 대통령이 제풀에 지쳐 물러나기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국민의 평균적 눈높이에서 김건희 여사의 행태와 그를 제어하지 못한 윤 대통령이 정말 못마땅하고 괘씸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대통령직을 내려놓아야 할 만큼 위중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오죽하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했지만, 정작 헌재는 노무현의 선거법 위반 관련 탄핵소추를 기각한 바 있다.

만약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이는 헌정사의 비극이다. 불과 8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경험했다. 그래서 문재인이 '거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역사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대한민국이 어떻게 망가지고 유린되었는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중도에 그만두는 비정상만은 막아야 한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충분히' 흡족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쯤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통 크게' 받아주는 것이 어떨까. 미흡한 면이 있더라도 용서하고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과, 이번 기회에 아예 허리를 분질러 끌어내리는 것을 두고 경중을 달아본다면 답은 뻔하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예뻐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혼란 상황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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