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66> 이스라엘의 바그너 터부에 맞선 바렌보임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이스라엘 전쟁 관련 사진. 클립아트 코리아
이스라엘 전쟁 관련 사진. 클립아트 코리아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1813~1883)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유물론, 낭만주의, 민족주의 등 당대 유럽의 여러 정신적 사조에 심취했고 이러한 사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게르만 신화와 중세 전설에 주목했다. 그의 오페라는 광대한 스케일을 통해 독일 민족의 위대한 과거를 재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독일 낭만파의 뿌리 찾기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그는 독일 전통의 수호자로서 오염되지 않은 하나의 독일을 열망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여성의 희생을 통한 남성의 구원과 재생을 약속하는 몰락과 죽음에 대한 동경, 화려한 무대 연출을 통해 독일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관객들은 비장미 넘치는 장면에 열광했으며 바그너가 펼치는 예술과 신화의 세계, 민족주의적 열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니체는 바그너의 거창하고 엄숙한 무대효과가 사람들에게 의도된 방향의 세뇌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는 의도된 특정 방향이 게르만 민족주의라는 점이었다. 니체의 예측대로 바그너의 음악은 예술 이상의 무엇으로 발전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바그너의 음악은 독일 대중을 집단 체면으로 이끄는 강렬한 수단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반유대주의로 나아갔다. 화려한 무대와 극단적인 감정의 파토스는 혼란기 독일 국민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바그너 숭배자였다. 그는 정치 행사마다 바그너 음악과 제의적 연출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반복되는 구호와 열기는 청중의 사고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으며, 광신적 일체감으로 사람들을 다시 집회장으로 끌어들였다.

1990년 유대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바렌보임(1942~)은 베를린필을 이끌고 역사적인 이스라엘 공연을 지휘했다. 그리고 2001년 7월 7일에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과거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부 청중이 흥분하여 공연장을 떠났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를 공식적으로 연주하는 것은 오랫동안 금기였다. 이 금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렌보임이다. 이스라엘 의회가 교육문화위원회를 열어 그를 기피인물로 선언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원색적인 공격을 받으면서도 바렌보임은 사과할 이유가 없다며 이스라엘의 바그너 터부에 정면으로 맞섰다.

터부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구속, 금기를 말한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내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바렌보임은 바그너 해석의 권위자로 오페라 '발퀴레' 1막을 연주하기로 하였으나 이스라엘 측의 요청으로 곡을 교체했다. 대신 앙코르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의 연주를 강행했다. 바렌보임은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와 나치가 악용한 그것과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와 뜻을 같이 하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로 다른 견해에서 오는 긴장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중동지역 젊은이들을 모아 괴테 시집에서 이름을 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이들은 음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묶어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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