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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정서적 양극화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쾌거(快擧)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부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빨갱이 작가'란 거친 폄훼(貶毁)까지 쏟아낸다. 일부 보수 단체들은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규탄했다. 이들은 "픽션과 논픽션을 가리지 못하는 미래 세대들에게 잘못된 사상이 새겨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편파·편향된 역사 왜곡의 손을 들어줘 노벨상의 권위를 실추시킨 스웨덴 한림원을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한 학부모 단체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선정적(煽情的)이라며 도서관 비치를 반대했다. 형부와 처제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내용 등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내용을 다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재혼한 삼촌이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역시 도서관에서 퇴출돼야 한다. 근친상간·불륜·동성애·살인이 곳곳에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이념'으로 읽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해 김훈 작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를 비판한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야권 강성 지지층의 뭇매를 맞았다. 2001년에는 보수 매체에 실린 이문열 작가의 칼럼을 비난한 반대 진영이 그의 책을 불태운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설령 잘못된 의견이라 해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의견과 진리를 대비함으로써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정서적(情緖的) 양극화'의 단면이다. 정서적 양극화는 '확증 편향'(確證偏向)과 '우리 편 편향'의 복합 작용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한다. 우리 편이면 무조건 옹호하고, 다른 편이면 무작정 핍박(逼迫)한다. 이런 편향이 뇌 전두엽에 똬리를 틀면, 세상은 미망(迷妄)에 빠진다.

정서적 양극화는 이념적 양극화와 함께 정치적 양극화에 속한다. 정서적 양극화는 정책과 이념의 대결보다는 편을 갈라서 상대 편에 무조건 반감을 갖는 현상이다. 논리와 이성보다 감정과 감성이 앞선다. 우리 사회에 만연(蔓延)한 정서적 양극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92.3%가 진보·보수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진보·보수 갈등의 심각성은 정치 성향에 따른 교제(交際) 의향을 묻는 답변에서 두드러진다. 58.2%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결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친구와 술자리를 할 수 없다는 응답은 33%였다. 정서적 양극화가 내면 깊숙이 스며든 것이다.

정서적 양극화는 갈등·혐오·차별을 조장한다. 정치권은 정서적 양극화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다. 그 결과 여당과 야당은 극한 대립각을 세운다. 끝 모를 정쟁(政爭)으로 민주주의는 훼손되고, 민생은 파탄 나고 있다. 정서적 양극화는 '호환 마마'(虎患媽媽)보다 무섭다. 정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어렵다. 진영·이념·젠더·세대·계층 등 다양한 갈등 요소가 얽혀 있어서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미국의 시인 겸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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