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라는 날개를 붙여 시간을 삼키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루가 그렇고 한 달, 일 년 열두 달이 이렇게 지나고 있다. 사라진 날들을 돌아보면 필시 큰 걸음으로 걷다 날아오른 게 분명하다. 누가 몰래 날개를 붙여 떠밀고 있지 않나 의심이 될 지경이다.
여수 앞바다에서 컨소시엄이 펼쳐졌다. 전국 각지에서 날개를 달고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회에서 굵직한 역할을 하고 이제는 잠잠한 걸음, 희끗희끗한 머리, 주름진 피부가 그간의 수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삶 자체가 그들 일진데 무엇을 논할 것인가. 하나둘 자리를 메꾸고 보니 족히 평균 고희는 돼 보이는 분들이 삶을 꾹꾹 눌러 담은 연륜을 온몸에 풍기고 있다.
어느덧 11월이다. 한 해의 마무리 시점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을 바라보듯 내가 지나온 시간을 되짚는다. 이맘때면 연초 계획에 대한 업무 결과 보고회, 토론회, 발표회 등 그간의 수고와 성과를 흔적으로 남기느라 분주하다. 문득 인생을 일 년으로 본다면 지금의 나는 몇 월을 지나고 있고 어떤 모습을 남기려 하는지 생각에 잠긴다. 낯선 곳에서 잠시의 여유 탓인지 하루가 저물고 겨울로 향하는 지금 묘한 심정이 된다.
밤바다를 바라보면 생(生)과 사(死)를 동시에 느낀다. 중후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생명을 잉태하듯 서서히 아침을 맞이할 노련함이 엿보인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새날을 열기 위해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환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둠을 깨치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 또한 광활한 바다 위에 해를 올렸다가 내리는 그 하루와 닮아있지 않을까. 나는 뵈지도 않는 밤하늘에 시선을 돌려 올해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11월의 심정을 묻는다.
낯선 도시에 잠시 머물다 떠나듯, 이 순간도 삶에서 스쳐 갈 것이다. 마치 일상의 시간이 겹치고 쌓여 언젠가 호흡을 닫고 떠나는 것처럼. 애달프게 손잡고 매달려도 아랑곳없이 날아가고 있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 해가 뜨면 눈에 뵈는 바다는 참 살갑다. 잔잔한 물결과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 선착장을 오가는 배. 그 주위로 바닷가를 찾은 여행객,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그들 앞에 물건을 펼쳐놓은 상인들. 어떤 모습으로든 나와 함께 호흡하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삶이다.
산다는 건 어느 순간, 하늘을 향한 날갯짓으로 건너갈 발걸음과 닮았다. 걸음의 끝은 누구든 피할 수 없는 한 방향을 바라본다. 먼저와 나중의 의미를 붙이기조차 모호하다. 조용히 마지막 호흡의 끝이 하늘을 향하게 되는 날, 어쩌면 지금까지 저 끝을 향한 끝없는 날갯짓이었는지 모른다고 혼잣말로 하지 않을까.
'한 줌 바람결에 흩어질 존재의 서글픔이여! 내 발걸음을 앞선 날갯짓이 나를 데려가는 날, 그땐 하늘이 땅이 돼 거닐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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