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축제도 많던데…젊을 땐 바빠서 못 가고, 늙어선 걷기 힘들어 못 가네."
많은 노선버스가 있는 대도시 대구에도 숨은 '교통오지'가 있다. 그곳엔 어쩔 수 없이 장 보러 가는 걸 포기하거나, 병원 가는 날엔 하루 전체를 다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8일까지 대구의 동북권과 서남권에서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한 마을 14곳을 방문했다. 교통 관련 기관의 연구에서 ▷시내버스 미운행지역 및 정류장 분포 ▷교통카드 이용현황 ▷노선당 평균 승객 등을 고려한 취약지들이다. 정류장이 거주지와 멀거나, 인구가 적고 도로가 협소한 경우가 많았다.
◆버스 없는 산골…외출은 '그림의 떡'
지난 5일 오후 1시 40분쯤 대구 동구 내동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동은 크게 정류장과 가까운 '작은마을'과 내동경로당이 있는 '큰마을'로 나뉜다. '큰마을'은 정류장에서부터 좁은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날 취재진은 오후 1시 43분부터 정류장에서 걷기 시작해 2시 47분에 내동경로당 앞에 도착했다. 중간에 작은마을에 들른 시간을 제외하고, 젊은 성인 걸음으로 30분 넘게 걸렸다. 특히 경사가 가파르고, 인도가 따로 없는 차도로 걸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큰마을 주민들은 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병원 방문이 쉽지 않아 아찔한 상황도 발생한다.
19살에 시집온 이후로 계속 큰마을에서 생활하는 장재균(91) 씨는 "지난 6월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손과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고 어지러워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119를 불렀는데 여기가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40분이 지난 뒤에 구급차가 도착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팡이 없으면 걷기도 힘들 만큼 몸이 안 좋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엄두조차 못 낸다. 병원 갈 때 나드리콜(교통약자 이동 서비스)을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택시를 이용한다. 나드리콜은 1시간 30분 동안 도로에서 기다리는 등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홀로 사는 홍분이(94) 씨는 "나는 택시 부르는 방법을 몰라서 병원이 갈 때 이웃에게 부탁해 차를 얻어 탄다"며 "이웃에게 다른 일정이 있으면 지팡이 짚고 조심조심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이태희 내동경로당 회장은 "정류장까지 젊은 사람 걸음으로도 30분 넘게 걸리는데 노인들은 오죽하겠느냐"며 "하루 운영 횟수가 적어도 괜찮으니 여기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구청에도 몇 번이나 진정을 넣었으나 나아진 건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서만 40분
지난달 30일 동구5번을 타고 오후 1시 44분쯤 '율하천6교2'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목적지인 종점인 매여마을까지 한 정류장을 남기고 왕복 1차로를 걸었다. 완만했던 경사가 점점 급해졌다. 30분쯤 걸었을 땐 땀이 맺혔다. 오후 2시 41분쯤 종점 정류장에 도착했다. 중간 휴식 시간을 고려해 걷는 시간만 최소 40분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두 정류장 사이 거리가 너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매여마을 주민 이도연(78) 씨는 "반야월시장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팔려고 오일장이 설 때마다 동구5번을 탄다"며 "종점과 바로 직전 정류장 사이가 워낙 멀다 보니 그 사이에 있는 식당과 교회에 가고자 내려 달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지붕이 있는 정류장이 아니더라도 안내 표지만 설치해도 좋으니 두 정류장 사이에 버스 서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박우연 매남골식당 대표는 "여기는 대중교통으로 오기가 너무 불편해서 식당 직원 중 차가 없는 경우엔 내가 직접 승합차로 태워준다"고 한숨을 쉬었다.
버스정류장과 운영 횟수 확대에 앞서 도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장용 매여마을 통장은 "우선 인도와 자전거 전용 등 도로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아래 율하7교에서부터 마을까진 인도가 아예 없고, 시속 30㎞ 제한 구간임에도 빠르게 달리는 차와 자전거에 사람이 치이는 사고가 잦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전동스쿠터로 이동하다 도랑에 빠지는 등 사고도 자주 발생하는데, 최근에도 비슷한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고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종점을 지나서도 마을이
지난달 28일 사과로 유명한 평광마을을 찾았다. 특히 '끝마을'로 불리는 평광2통 마을엔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을 기리고 세워진 모영재가 있다.
팔공1번을 타고 종점인 평광종점 정류장에 내려 평광2통 마을까지 걸었다. 길은 차 한 대만 지나갈 만큼 비좁고, 보행로 구분이 없는 데다 경사까지 가팔랐다. 호우나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질 수도 있으니 통행자는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1시간이 걸려 끝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평광2통 주민들은 교통뿐만 아니라 경로당 이용 등 다방면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버스정류장을 비롯해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시설들이 모두 평광1, 3통에 몰려 있어서다.
10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생활하는 윤복수(85) 씨는 "50대까지는 버스 타고 다녔지만, 나이를 더 먹고는 다리가 아파서 그러지 못한다. 경로당도 어쩌다 행사가 열릴 때나 차를 태워줘 다녀오지 평소엔 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병원이나 시장에 가려면 무조건 나드리콜을 부르는데, 여기는 눈이나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럽고 위험해 기사들도 오길 꺼린다. 그래서 겨울을 대비해 미리 약을 많이 타오곤 한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열악한 도로 상황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영정 평광2통장은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지정됐음에도 도로와 산림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지 않고, 배수로도 없어 비만 오면 물이 넘친다"며 "외지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도랑이나 밭에 빠지는 사고도 자주 있어 도로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번화한 도심에 가려진 숨은 벽지
지난 6일 시내에서 급행3번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대중금속공업고 건너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정류장 주변은 아파트 대단지, 대형 식당,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들어차 있어 번화했다.
목적지인 북구 읍내동 안양마을로 가려면 정류장에서 30분 이상 걸어야 한다. 고층 아파트 입구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안양마을까지 1㎞ 남았음을 알리는 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를 기점으로 길도 좁아지고, 산골 풍경이 펼쳐진다.
정류장에서 50분을 걸어 마을에 다다랐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을 중심으로 양옆에 논과 밭이 펼쳐졌고, 집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마을 주민 송연실(74) 씨는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병원을 갈 수밖에 없는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데 너무 멀어서 도중에 여러 차례 쉬어야 한다. 대부분 환승해야 해 어디라도 다녀오려면 그날 하루를 다 써야 한다"며 "작은 마을버스라도 하루에 한두 차례 운영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부지가 협소해 버스 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재현 읍내9통 통장은 "이 마을로 들어오려면 고층 아파트 옆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주정차한 차량이 많아 버스가 진입하기 어렵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개울이 있어서 차라리 복개 공사를 통해 도로를 넓혀 달라고 꾸준히 건의해왔지만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들에게 운전면허를 반납하라고 하지만, 정작 반납한 뒤 노인들의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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