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에 1만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하루에 10권인 셈이라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치고. 나라면 3년에 1만권 읽은 사람보다 1년에 3권 읽은(어떤 책이냐에 따라 다를 테지만) 사람과 더 친밀하게 지낼 것이다.
선물했는지 잃어버렸는지 불분명한 책들이 있다. 빌려준 건 아닐 거다. 나는 책을 빌려주지도 않고 누구에게 빌리지도 않으니까. 서가를 아무리 뒤져도 안 보이고 당장 살펴봐야 하는데, 도서관 대여도 불가능하면, 일단 산다. '강정의 나쁜 취향'도 같은 예다. 표지가 온통 빨갛다. 80년대라면 두 말 할 필요 없이 불온서적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특별히 인상 깊은 책은 무심히 건넨다. 나 혼자 읽고 끝내기엔 아까운 마음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과 이언 매큐언의 '속죄' 등이 대표적이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과 올리비아 랭의 산문집을 넣어도 좋겠다. 외로운 이에게 제격이다. 이런 유의 책을 건네는 건 어쩌면 내 세계관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이거나 이 책을 통해 나와 심리적으로 연대하자는 간청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무심히 건넨다'고 쓴 이유는 책은 선물하는 품목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테면 책을 선물하는 건 아내 생일에 가전제품을 선물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이것만큼 게으른 선택은 없다고 믿는다. 선물하는 쪽에서야 상대에게 어울릴지 그의 취향에 맞는지를 상상하며 고민 끝에 결정했겠지만,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책을? 선물이라는 거창한 의미와 포장 없이, 내가 예전에 읽었는데 너도 좋아할 거 같아서…하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넘겨주는 책. 요즘말로 오다가 주운 책, 정도라도 괜찮지 않을까.
책을 읽다보면 메타텍스트에 빠질 때가 있다. 하루키 소설이 마라톤과 재즈 감상을 분기시킨다면 얼마 전에 읽은 탕누어도 같은 케이스였다. 그러니까 탕누어를 경유해 발자크와 슈테판 츠바이크를 다시 펼쳤고,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보았다. 제임스 카비젤이 에드몽 단테스 역을 맡고, 가이 피어스가 당글라르로 나오는 그 영화를. 뒤마의 소설에서 에드몽 단테스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돌아와 펼치는 복수극을 가능케 만든 건 자본, 즉 돈의 힘이었다. 유럽 최대 은행가 3명이 서명한 무제한 신용장 말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블랙카드'다. 그래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나?
어떻게 하면 영화비평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많이 쓰라고 답한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는 동시에 경험치를 높이라고 조언한다. '영화만 보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라는 말도 반드시 덧붙인다. 아는 것이라고는 영화 밖에 없는 사람과의 대화를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책도 마찬가지일 터다. 책으로 연애를 배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얘기. 오직 책만 읽는 사람은 한 권만 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쪽이다. 답이 현장에 있듯이 진짜 세상은 언제나 책 밖에 있다. 오죽하면 앙드레 지드도, 테라야마 슈지도 "책을 버리고 밖으로(거리로) 나가자"고 했을까.
3년에 1만권 읽은 사람은 어쨌든, 좀 무섭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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