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의 진영이 서울 도심을 좌우로 가른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초라한 국정 지지율이 말해 주듯 컵 속의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비아냥이 시중의 민심이다.
지지율은 국정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정량값이다. 민심을 가리키는 이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집권자의 책무다. 따라서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태도는 경기 점수를 외면하고 열심히 뛰기만 하겠다는 독선적 아마추어리즘이다.
지난 5월부터 20%대에 고착된 국정 지지율은 결국 10%대로 주저앉았다. 유감스럽게도 민주화 이후 임기 2년 차에 레임덕의 경계에 선 첫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 참담한 성적표는 집권의 명분이었던 공정과 상식을 걷어찬 과보다. 집권 세력이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기우는 사이 건실한 보수와 중도가 이탈하며 집권의 기반이 해체됐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단의 지지층만으로 국정이 정상 운영될 리는 만무하다.
그나마 흔들리는 대통령을 떠받치는 정치권의 두 축은 여야의 대표들이다. 한동훈 대표는 집권당의 지지율을 견인하며 거대한 민심 이반을 상쇄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위기로 추락하는 대통령에게 반사이익을 안기고 있다. 가정하건대 한 대표와의 불협화음이 격화되고 민주당 리더십이 교체될 경우 국정 지지율 10%를 지키는 것도 벅찰 것이다.
기울어진 당정 관계는 국정 실패의 시발점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를 제외하면 국정 지지율이 집권당 지지율을 웃돈 적이 없다. 그리고 당정 마찰과 보수 분열이 가속화되며 그 간극은 점점 더 벌어졌다. 윤핵관, 연판장 사태, 김기현 지도부 붕괴로 집권당이 대통령 전위대로 전락한 레퍼토리가 1막이었다.
22대 총선 참패, 한 대표 패싱, 김건희-명태균 컬래버레이션, 국정 실패로 이어지는 2막은 더욱 극적이어서 귀추를 알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당정을 주종 관계로 여기는 대통령의 인식 오류가 확인되었다. 과거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항변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역설적으로 집권당 대표를 대통령의 수하로 여기는 태도는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국정 몰락의 기폭제다. 개인사를 넘어 공천과 국정 개입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갖은 의혹과 추문에 국격이 휘청거린다. 많은 이들은 사사로이 국사를 농단한 제정 러시아의 라스푸틴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의 데자뷔를 떠올린다.
김건희 특검이 필요 불가결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의혹이 워낙 방대해서 대통령의 대리 사과로 때울 차원을 넘었다. 특히 헌정 질서를 위해서 국정과 당무 개입 진위는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권의 초심을 회복하고 레임덕을 돌파하려면 김건희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가족의 치부로부터 자유로운 집권자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집권당이 김 여사 의혹을 안고 치르는 21대 대선은 필패다. 설령 이 정부에서 의혹을 뭉개더라도 더욱 예리한 진실 규명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7일 대통령 담화와 기자회견은 국민의 우려에 불을 댕겼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과하고 어떻게 일신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제 레임덕 극복 여부는 대통령의 실천에 달려 있다. 수평적 당정 관계와 김건희 특검은 국정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와의 전략적 동거는 보수 통합의 대전제다. 반세기 전 유럽의 좌우 동거 체제에서 역동적인 계급 타협이 복지국가의 성공을 가져왔다. 빗대어 말하면 윤·한 동거 체제에서 수평적 당정 소통과 실용적 국정 수행은 보수 재건의 기틀이다.
다음으로 도를 넘는 가족애를 법치주의로 오인하는 사고와 결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법정이 아니라, 법리에 무지한 절대다수가 상식의 삶을 영위하는 곳이다. 국민의 분노에는 아랑곳없이 잘못을 사과하면 공세의 빌미를 준다는 얄팍한 논리가 화를 키웠다. 그 결과 총선 참패와 보수 분열, 레임덕이 현실화되었다. 이 책임은 친윤을 비롯한 대통령의 호위 무사들도 함께 져야 한다.
그럼에도 특검을 위헌적 제도로 치부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절망을 안겨 준다. 그래서 대통령은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면 안 된다. 독단을 내려놓고 민심과 함께 가야 한다. 그리고 국정을 대전환하자. 수평적 당정 관계와 김건희 특검으로부터 첫 삽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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