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세계 무역 질서가 극심한 불확실성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산업계 역시 수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압박에 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이에 맞불을 놔 '세계 관세 대전'이 벌어지면 세계 무역 위축으로 한국은 최악에 60조원대에 달하는 수출이 감소하는 직접적 경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미국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커진 한국의 대미 무역 수지 흑자를 빌미로 한국을 특정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압력을 비롯한 통상 압력을 가해 올 가능성도 거론돼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춘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 무차별 관세에 세계 무역대전 벌어지나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후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한다면 세계 무역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시 제조업·중산층 부활을 위해 미국 우선주의를 견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반도체, 2차전지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반도체 지원법 이른바 '칩스법'과 배터리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보조금 및 세액공제 혜택 축소 필요성에 대한 언급해왔다.
그는 중국산엔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 수입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에까지 보편 관세를 매겨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무차별 '관세 난타전' 양상이 벌어지고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이 강화되면 수출 주도 한국 경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대미 수출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관세 전쟁으로 무역에 타격을 받은 중국 등 제3 국가로 수출도 감소하는 다층적 피해를 볼 수 있다.
미국이 중국산 IT 품목에 고율 관세를 매겨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애플 등 글로벌 기업에 영향을 주면 중국 현지로 반도체 등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수출에도 타격을 주는 식이다.
구체적인 한국의 피해 전망도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이 양자 FTA가 있는 한국을 포함해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주요 적자국 한국...트럼프 표적되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눈에 주요 무역 적자국인 한국이 무역 압박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정부 통계로 한국은 미국의 주요 적자국 중 하나다. 한국은 2021년까지 미국의 14위 무역 적자국이었는데 이후 꾸준히 순위가 올라 올해 1∼8월 기준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대만, 일본에 이어 8위에 올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23년 444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올해 1∼9월도 399억달러로 연간 기준으로 또 최대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한미 FTA가 존재하지만 새 미국 정부가 대한국 무역 압박을 마음먹었을 때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FTA는 법률에 준하는 외국과의 조약이라서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만 수정하긴 어렵다"면서도 "트럼프 집권 1기에 수십 년 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철강 수입 제한을 한 것처럼 다른 방안을 동원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 정부 "다양한 고위급 채널 가동, 대미 협력 강화"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발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가운데 여러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통상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해 우리 경제 안정과 기업들의 이익을 지켜내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그간 여러 공개·비공개 채널로 국내 국제·통상 전문가,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통상 대응 전략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대미 접촉(아웃리치)을 확대해 미국 조야와 네트워크 확대를 도모해왔다.
한 통상 당국 관계자는 "민감성 탓에 외부 공개할 수 없지만 트럼프 후보 당선을 포함한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정부 차원의 대응책 논의가 이뤄져 왔다"고 전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전면적 정책 수정이 있을 것이나 당분간 트럼프 행정부 조치가 정비될 때까지 차분히 상황을 주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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