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 리뷰] 사회적 재난과 죽음을 하동기 방식으로 <카운팅>하는 법 " 한국 사회 희생이 부재한 죽음과 죽음에 관한 응시의 시선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하동기 연출은 지난해 봄, 작가 겨울 무대에서 낭독을 거쳐 공연된 <카운팅>(작, 윤소정)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극단 백수광부 정기 공연 <카운팅>에 대한 리뷰로 산불 재난의 이야기다. 연극은 잿더미로 변해가는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재난으로 한국 사회에서 카운팅 되지 못하는 '죽음'과 '희생'에 대해 응시한다. 겨울철 화재로 빈번한 강원도 출신의 윤소정 작가는" 우리에게 진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라고 밝힐 정도로 한 마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놓고 타인에 대한 희생이 부재한 현실을 극중 인물을 통해 바라보는 작품이다.

하동기 연출은 전작 공연에서 잿더미로 변해가는 마을 공간구조에 종배집, 사진사,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고 살아가는 귀농 부부와 남국의 집, 마을을 돌며 산불을 진압하려고 희생하는 이장과 사회적 재난의 죽음을 숫자로 카운팅하는 관공서 아들을 등장시켰다. 그 배경으로 카운팅 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 재난의 죽음을 응시하고 하동기 연출은 사회적 죽음들이 망각되거나 통계로 카운팅 될 뿐이라는 현실을 비튼다. 죽음이 조여오는 산불 재난에서도 반려견을 지키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마을 사람들을 기록하는 인물이 사진사가 유일하다는 것도 이 작품이 관통하는 사회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재공연에서 다른 점은 전작 아르코 소극장에서 선돌극장으로 이동되었고, 종배역에 배우 장용철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 '희생의 부재' 사회재난과 타인의 죽음을 응시하는 시선

선돌극장 무대는 잿더미로 변해가는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시간으로 돌려놓는다. 우리 사회에서 카운팅 되지 못한 죽음을 관찰한다. 무대는 잿빛이다. 공간은 종배집, 사진사, 반려견을 키우고 살아가는 귀농 부부 강희와 남국의 집, 마을을 돌며 산불을 끄려고 희생하는 이장, 아버지를 이해 못 하고 죽음을 통계의 방식으로 인식하는 관공서 아들, 잿더미가 된 마을을 돌며 도둑질하는 극 중 인물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채워진다. 산불이 나면서 은 순(전국향 분)은 " 산불이 옮겨붙고 있다"라며 오빠 종배 집으로 가방 하나 챙겨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호흡을 들썩거리며 산불 얘기를 꺼내는 배우 전국향은 강원도 마을에서 살아가는 완전한 아줌마다.

구부정하게 휘어 보이는 다리 하나를 툭 하니 들고, 산불에도 꿈쩍 앉고 버티는 오빠 종배(장용철 분)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호흡이며, 대사의 리듬은 극중 인물과 배우와 동일체가 되어 몸의 감각도 극중 인물로 푹 배어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화영은 고모 집에서 기르던 순이를 두고 왔다며 난리다. 그런 고모를 향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종배는 목줄에 묶여있는 은순이 집 개(순이)를 데리고 오겠다며 나가는 사이 무대는 불길이 조여오는 산으로, 동네로, 길가로 전환되면서 사진사, 귀농 부부, 종배와 화영이의 서사들이 파편적으로 진행되면서 이들 삶을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아내를 자동차 사고로 잃은 뒤부터 죽음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종배는 불길을 헤집고 돌아와서는 "못구했다… 또… 못구했어…" 라며 뒤돌아 마지막 대사가 사회적 재난의 죽음을 향할 때 대사 한마디는 한국 사회를 파고든다.

이들의 죽음을 희생이 부재한 현실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산불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진사는 자신을 살려낸 화영을 기억하고 시골 마을로 돌아와 이들 삶을 기록하는 극중인물이다. 귀농 부부는 남편이 죽어가면서도 반려동물 봄이를 챙기고 종배는 순이를 살려내려고 애쓴다. 황 이장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이고 공무원이 된 아들은 죽음을 카운팅하는 통계로만 바라본다. 이들은 가족이 아니면서도 가족이다. 은순은 남과 다를 바 없는 9촌이면서도 종배를 알뜰하게 챙기고 화영은 투덜거리면서도 고모라고 부른다. 종배는 집에 묶여있는 순이를 구하러 불길에 뛰어들고, 사진사는 이들 삶을 기록한다. 이러한 관계 설정은 작가가 카운팅 될 수 없는 사회적 죽음으로부터 은유하는 방식이다. '타인에 대한 희생과 죽음을 기억하는 응시의시선'들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 타인에 대한 기억의 방식

은순은 종배 아내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종배를 걱정하고, 화영은 사진사를 구한 어린 시절을 대수롭지 않다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남국(귀농 부부)이 암으로 죽음이 임박해도 사람과 동일화된 봄을 설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방대원의 소방호스가 마을 불길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함을 보일 때면 구멍이 난 한국 사회의 재난 시스템을 떠올리게 된다. 공무원 아들의 철없는 한마디에는 사회재난에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정부를 소환하게 된다.

불난 마을에서 사진기를 훔쳐 달아나는 남자가 등장할 때는 재난의 기록도 삭제되는 대한민국 현실이 떠올라 피식 웃게 되면서도 의미를 알아차릴 때쯤이면 먹먹하다. 전작 <카운팅>에서는 재난과 죽음에 대해 응시하는 시선만 드러났다면, 재공연에서는 연출 하동기가 '죽음'을 관찰하는 카운팅이 달라졌다는 것이 변화다. 전작 공연에서는 반려묘와 개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까지 섞이며 죽음을 향하는 시선들이 모호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잿더미로 조여오는 죽음의 순간에도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명확해졌다 할 수 있다. 선돌극장으로 옮겨진 배우들의 연기로 하동기의 카운팅은 숫자가 아닌 사회적 죽음과 재난으로 향하게 됐다는 점도 달라졌다. 아쉬운 것은 카운팅 될 수 없는 죽음들이 소멸하거나 망각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상이라면, 비사실적인 무대(배경)과 장면전환, 상징적인 영상 투사 방식 구조와 사실적 연기가 부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장면의 전환도, 배우들의 속도감도, 시공간의 흐름도 의도치 않게 매끄럽지 못할 수 있다. 구조화된 것을 걷어내고 죽음을 바라보는 응시의 시선들이 순이와 봄이(반려견)를 표현한 영상 투사 방식으로 시공간의 변화를 연결하고 비사실적으로 무대와 연기를 통일성 있게 무대와 극을 구조화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하동기 연출이 전작과는 다르게 사회적 재난과 죽음을 응시하는 <카운팅 >하는 법이 연출적으로 변화를 보였다는 것과 타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를 향한 '희생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은 재공연의 성과다. 무대를 채우는 것은 배우들이고 전국향은 감각적 연기를 보여준다. 장용철의 대사는 아플만큼 감정은 소리가 된다.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미니인터뷰 | 연출 하동기

─ <카운팅> 희곡과 공연에 애착이 많은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극단 백수광부의 신작 희곡 개발프로젝트인 '신작 신진예술가 당신에게 부탁해'(이하, 신신당부)를 통해 발굴한 작가 작품이라는 점이 크다. '신신당부'에 선정된 후에도 신춘문예와 창작산실 등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카운팅> 희곡을 쓴 윤소정 작가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특별한 이유는, 이야기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사나 죽음을 경험하고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 관한 관심이 높은 편이라 <카운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강한 애착을 느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거대한 재난의 상태일 수 있는데, 거기서 살아가야 하는 모두에게 위로를 전하고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

─ 극에서 사회적으로 카운팅이 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응시의 시선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 재공연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메시지였다. 사회가 카운팅하지 않는 인물들이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재난 상황이 많지 않은가?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그들 힘으로 살아갈 마음을 얻어내는 모습 등이 <카운팅>으로 그려진다면 관객들도 살아낼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작품은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결국 이들의 죽음과 삶은 산불로 고립된 채 살아야 하는 이들 스스로 해결한다. 죽음에 갇힌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국가도, 타인도 아닌 산불로 갇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카운팅>은 굉장히 사실적인 희곡이면서도 거대한 은유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산불 속에 갇힌 사람들은 끝없는 재난 상황 속에 놓인 우리 사회와도 같다. 우리 사회 역시 거대한 재난이 닥쳐왔을 때 희생자도, 생존자들도 잘 보호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사회시스템이 모든 재난이나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사회시스템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카운팅. 극단 백수광부 제공.

─ "못 구했다… 또… 못 구했어…" 장용철 배우의 마지막 대사가 작품의 메시지 아닌가?

"종배가 던지는 이 대사는 우리가 사회적 참사나 개인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많은 사람이 가지는 부채감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죽음의 원인이 꼭 나에게만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 염치 같은 것이지요. 이런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은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희생의 용기를 가진다고 본다.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 사실적인 무대와 비현실적인 장면들, 그리고 반려견들의 영상투사가 통일성이 없어 보인다. 무대를 비사실적으로 구조화했다면.

"작품이 공간의 변화가 많고 사실적인 장면들에 많아 고민이 많았다, 이번 공연은 배우들의 연기는 사실적인 연기로 그려내고, 나무로 둘러싸인 숲속과 같은 무대를 구현하고자 했다. 영상에 투사되는 동물들은 비어있는 액자에 담긴 사진사의 사진처럼, 존재하고 있지만 카운팅되지 않는 존재들을 시각화해 보고 싶은 의도로 연출적으로 시도했다. <카운팅>을 재공연하게 된다면 비사실적 무대 구조를 만들고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생각을 하고 있다."

─ 앞으로 연출 계획은?

"소시민이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좋아해 희곡들을 찾아 공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2025년에는 일본 작가 오리 키요시의 <국어의 시간>을 연출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어를 배워야만 했고, 일본어를 가르쳐야만 했던 조선인들의 삶을 그려낸 극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뜻깊은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해 국내와 일본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백수광부 하동기 연출은 그동안 <다방>, <헨젤과 그레텔>, <마터>, <럭키슈퍼>를 연출해 왔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하동기 연출가
하동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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