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트럼프 위기 겹친 한국 증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지난 8월 초 코스피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폭락한 '블랙먼데이' 이후 한국 증시는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시 코스피는 하루 만에 8.77% 떨어지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이후 등락을 거듭했지만 지난 8일까지도 블랙먼데이 직전 대비 7.8% 하락으로 나타났다. 한미 기준금리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증시 불안 요소들이 상당히 해소됐음에도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러시아, 튀르키예를 빼면 증시 상승률이 꼴찌다. 전쟁 중인 러시아, 물가상승률이 50%에 육박하는 튀르키예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우리 증시, 나아가 경제가 얼마나 엉망인지 단적(端的)으로 보여 준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은 10%에 육박하는 상승률을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은 지난 8월부터 석 달째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8월 18억5천만달러, 9월 55억7천만달러, 10월 41억7천만달러 순유출됐다.

증시를 버티는 개미들은 위태롭다.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가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 18조원을 넘어섰다. 한때 20조원대이던 신용거래 융자잔고(殘高)는 당시 17조원대로 떨어졌다가 다시 높아졌다. 특히 삼성전자 빚투만 1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대로 떨어지면서 저가 매수 기회로 여긴 개미들이 몰린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로 신용거래 융자 이자율도 떨어져 빚투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당장 삼성전자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서지 않는 한 수많은 개미들이 이자 부담을 떠안은 채 주식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증시로 내달리던 2030세대가 주춤한 사이 50세 이상 투자자들의 빚투 규모는 18%가량 늘어 8월 말 기준 10조원을 넘겼다. 퇴직 후 고수익을 노리고 빚까지 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한층 강화될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수출 주력 종목인 반도체부터 전기차, 2차전지 등 업종에 대한 우려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수출기업의 위기에 더해 미국 증시 활황에 따른 투자금 유출도 우려한다. 트럼프 승리 이후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는 폭등했다. 대선 불확실성 해소에다 친기업 정책과 감세,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까지 호재(好材)로 작용하면서 한동안 미국 증시는 활황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결국 미국 증시로 자금이 쏠리면 코스피는 더욱 위축(萎縮)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장기적 반등(反騰)의 기대도 있다. 트럼프 효과가 사그라들면 한국이 새 투자처로 떠오를 수 있다거나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등의 전망이다. 그러나 상대적 기대 효과일 뿐 한국 증시, 나아가 한국 기업들이 투자 매력을 갖추지 못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상장 기업들의 주주총회 관행(慣行)이 외국인 투자자 참여를 가로막고, 이런 문제점들은 20년 전과 비슷하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내놓은 '미로 같은 한국 주주총회 길 찾기' 보고서다. 기업 전망도 불투명한데 의결권을 행사할 주주총회마저 배타적이니 외국인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 상황마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외국인은 떠나고 개미들은 지쳐 가는 한국 증시의 돌파구(突破口)를 찾아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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