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럴 줄 알았다."
지난 1일 찾은 대구 서구 신평리시장의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의혹을 받는 한 점포. 이날도 불은 꺼져 있었고, 사람이 없었다. '직접 채취' 문구가 붙어있는 가판대 위에는 오래전 버려진 누런 종이컵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 시장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는 한 상인은 "처음 저 가게가 문을 열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고 털어놨다. 점포 주인은 지난해 8월쯤 간판도 달지 않은 채 온누리상품권 환전 한도 상향 신청을 했고, 시장 상인회장이 우선 장사부터 제대로 하라고 돌려보낸 점포였다고 한다.
점포 주인은 그 이후로 간판을 달고, 점포 안에 쌀 몇 포대를 갖다 놨다. 두 달 동안 가게에 불을 켜고 정상 영업을 했다. 그렇게 온누리상품권 환전 상향 신청서에 상인회장의 도장을 받았다. 그러나 도장을 받아 간 이후, 점포에 불을 켜는 일이 부쩍 드물어졌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증언이다.
장사도 제대로 하지 않던 쌀 가게에서 1년 동안 온누리상품권으로만 약 1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해당 점포 앞을 지나가던 한 상인은 "어디 면 단위 지역의 쌀을 다 걷어서 온누리상품권으로만 팔았나 보다"라며 비아냥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대구 달서시장의 한 농산물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올해 지류 온누리상품권으로만 13억6천7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전국 6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찾은 점포 안은 농산물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주변 김밥집의 창고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전국 온누리상품권 매출 1~3위에 해당하는 대구 북구 팔달신시장 점포 세 곳이었다. 세 가족 명의로 된 이 점포들은 5개월 동안 무려 900억원대의 온누리상품권을 부정유통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곳 역시 현장을 직접 찾아 확인한 결과, 주변 상인들의 얘기 속엔 수상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금 깡'을 전문으로 하는 브로커의 개입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약 90억원의 이익 중 90%에 달하는 80억원가량이 모두 브로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브로커들은 전문적으로 제도의 빈틈을 노렸다. 점포 한 곳당 환전 한도를 최대 월 99억원까지 높일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환전 한도를 상향하려면 매출 신고 내역이 필요한데, 100억원 가량 선결제를 해서 매출 신고를 한 후 취소하는 방법을 써서 세금계산서를 만들도록 했다.
편법이 난무하는 온누리상품권의 세계에서, 매출 금액과 그 순위 자료만 들여다봐서는 그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점포 주인이 얼마나 자주 가게에 나오는지, 점포 내부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매출 증빙을 무슨 수로 했는지는 현장에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부정유통 의혹을 받은 점포들의 '서류'엔 큰 문제가 없었다.
결국 제도의 허술함이란, 서류만 보다가 현장을 놓친 데 있었다. 근처에 장사하는 상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데, 이를 관리하는 감독 기관은 서류만 확인하느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정 가맹점에서 수개월 동안 비상식적인 매출이 발생했지만, 관리·감독 기관인 소진공 등은 현장 방문을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류상으로도 2중, 3중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 상황을 꾸준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주무 부처에선 부랴부랴 현장 조사에 나섰다. 앞으로는 온누리상품권이 더 이상 편법에 휘둘리지 않도록 꾸준하고도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지길 바란다.
댓글 많은 뉴스
박정희 동상에 밀가루 뿌리고 계란 던지고…영남대 총동창회 "고발 조치"
'이재명 무죄' 탄원 서명 100만 돌파…15일 1심 선고
'무죄' 호소한 이재명 "있는 대로 말하라고 한 게 위증이냐"
집들이 온 친구 남편이 잠든 사이 성추행…친구와 남편은 '외도' 정황까지
작성자명 '한동훈', 尹 부부 비방글 올린 범인 잡는다…경찰 수사 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