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 자아와 메타자아를 찾아서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침팬지나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을 제외한 동물들은 '일차 의식'만을 지니고 있다. 일차 의식은 현재적·현장적이다. 즉 과거나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없이 현재·현장에 있는 어떤 한 장면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 행위를 수행한다.

이 단계에서는 본인이 본인을 의식하거나 관찰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아상(自我像)을 지닐 수가 없고 자신의 행동을 평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약한 동물을 잡아먹을 뿐 그 동물에 대한 연민(憐愍)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다.

그러나 침팬지나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들은 일차 의식뿐만 아니라 '고차 의식'을 갖고 있다. 고차 의식을 갖춘 사람은 현재의 장면뿐만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연속적 상황 인식을 할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본인이 본인을 인식할 수 있고 관찰할 수가 있다. 본인이 본인을 관찰할 수 있음은 관찰의 대상이 되는 현재의 육체적인 자신1과 자신1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2를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신1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2는 무엇인가?

이것을 '자아 정체성' 또는 줄여서 자아(自我)라 부를 수가 있고, 양심이라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은 자신1이,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특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든 자아상일 수도 있다.

필자는 자신2를 자아라 부를 것이다. 자아는 자신1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자신1이 바르게 처신하면 자아는 자긍심을 느끼겠지만 그릇된 언행을 하면 자책(自責)하게 된다.

자아를 찾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며 이러한 관심은 문학에도 잘 나타난다. 가령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에서는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고 탄식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은 자아이다.

자아를 찾고 자아가 시키는 대로 사는 걸 누구나 바라지만 그렇게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쁜 것이 솟아 나오면 자제력을 발휘하여 억눌러야 하고, 좋은 것이 솟아 나온다 해도 사회적 제약이나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그것을 실행하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1을 지켜보는 자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아를 감독하는 '자신3'도 있다. 가끔 멈춰 서서 "제대로 된 자아인가?, 자아가 자신1의 삶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를 되물어 보아야 한다. 이렇게 자아를 감독하는 자신3을 필자는 '메타자아'라 부르는데 손리사 교수의 '메타인지 학습법'(2019)에 나오는 '메타인지' 개념을 응용해서 만든 용어이다.

메타자아가 가끔 자신1과 자아를 관찰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갖자. 논어의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도 결국 메타자아를 소환해서 자신1과 현재의 자아를 돌아보라는 말로 이해된다. 가끔씩 자신1과 자아를 돌아본다면 그래서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는다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많은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자신1로 인해 이웃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지도자들도 메타자아를 소환해 때때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네 종류의 지도자 상(像)이 도덕경에 제시되어 있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 정도만 알려진, 즉 일을 잘 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지도자이고, 둘째는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이며, 셋째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이고, 마지막은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이다.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형의 지도자가 되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빈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자.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즉 말과 낯빛을 교묘하게 꾸며 아첨하는 자들을 멀리하자. 귀에 거슬리지만 참된 말은 받아들이자. 잘못된 부분은 쇄신(刷新)하고, 국민 눈높이와 공공선에 맞는 어진 정치를 펴자. 그러면 보다 많은 국민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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