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서광호] '발' 없는 서민들

서광호 기획탐사팀장

대구 동구에 있는 작은 산골인 매여마을에 홀로 사는 박시원(가명·92) 씨가 지난 18일 오후부터 무섭게 쏟아지는 비에 전동스쿠터 속력을 내며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윤정훈 기자
대구 동구에 있는 작은 산골인 매여마을에 홀로 사는 박시원(가명·92) 씨가 지난 18일 오후부터 무섭게 쏟아지는 비에 전동스쿠터 속력을 내며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윤정훈 기자

매일신문 서광호 기자
매일신문 서광호 기자

팔공산 자락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이 중 대구 동구 내동의 마을은 교통 오지다. 큰길의 버스 정류장까지 30분 넘게 걸어야 한다. 이곳의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는 몇 달 전 아찔한 순간을 넘겼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어지럼증이 발생했다. 급하게 아들에게 전화해 119구급대를 불렀다. 40분이 넘어서야 구급대가 와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할머니는 지금도 손발이 떨리거나 감각이 없는 등 거동이 편치 않다. 70년 넘게 살아온 마을을 떠날 수도 없다. 이웃도 대부분 고령이어서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또다시 위급한 상황이 생길까 걱정이 크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병원에 제때 갈 수 있을지 염려된다.

동구 매여동의 산골짜기 종점 마을 주민들도 교통 불편을 호소한다. 이 마을의 92세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힘겹게 외출한다. 75분 간격의 버스가 있지만 불편한 다리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1인용 사륜 전동 스쿠터를 타고 왕복 2~3시간을 이동한다. 빠른 차들이 오가는 도로로 다닌다. 위험하지만 혼자 있는 집보다는 공원 산책이 낫기에, 궂은 날씨에도 긴 이동 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

광역시인 대구 곳곳에 교통 오지가 있다. 지난해 편입된 군위군을 제외하고도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 적지 않다. 특히 동구를 비롯한 동북권과 달성군의 서남권에 대중교통 사각지대가 몰려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지난해 대중교통 현황조사에 따르면 '대중교통 서비스 부족 지역'으로 동구는 내동과 용수동, 평광동, 매여동 등 산촌 지역이 대부분이다. 달성군은 전역에 교통이 불편한 농촌 마을들이 있다. 이 외에도 북구와 수성구, 달서구 등지에도 교통 취약지가 있다.

그나마 달성군에는 대체교통수단이 있다. 2018년 농촌형 수요응답형 대중교통(DRT)인 '행복택시'를 도입했다. 올해는 7개 읍‧면 46개 마을에 행복택시를 운행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선버스가 부족하거나 없는 마을들이 있다. 현재 행복택시로는 이동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

달성군 이외 지역은 지난해부터 도시형 DRT가 운행을 시작했다. 대구혁신도시 의료R&D지구와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수성알파시티 등 주로 출퇴근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달 개통한 팔공산 DRT는 관광객을 위해 주말과 공휴일만 운행한다. 소외 지역 주민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의 발'인 시내버스가 또다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10년 만에 노선 개편을 추진 중이다. 준공영제 재정지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군위군 편입과 부도심 확대 등 도시 구조가 달라졌다. 확장하는 도시의 교통수요를 감당해야 한다. 버스 대수는 그대로인 채로 말이다.

이번 노선 개편안에서 벽오지에 대한 대책은 찾기 힘들다. 중복 노선을 줄이거나 없애는 한편 신규 노선은 직‧급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선버스 사각지대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교통 오지에도 사람들이 산다. 대부분 몸이 불편한 고령자로, 대중교통 서비스에서 거의 방치돼 있다. 의료 접근성이 취약하고, 생필품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나아가 교통 불편은 소통 단절로 이어져 정서적인 고립감을 낳는다.

그야말로 '발'이 없는 서민들이다. 아쉽게도 이번 노선 개편에서 이들의 소외가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비용과 효율이 아닌 교통 복지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 최소한 아프면 병원을 찾고, 먹을거리를 구하러 시장에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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