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북카페부터 북맥, 북스테이까지…다채로운 대구 독립서점의 매력

차와 함께 책 볼 수 있는 '차방책방'
맥주·칵테일 함께 즐기는 '심플책방'
북스테이 공간 있는 '여행자의 책'

대구 중구 독립서점 차방책방의 내부 모습. 한소연 기자
대구 중구 독립서점 차방책방의 내부 모습. 한소연 기자
차방책방에 진열된 이 책들은 차방책방의 주인이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이다. 한소연 기자
차방책방에 진열된 이 책들은 차방책방의 주인이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이다. 한소연 기자

서점에서 책을 고르며 한 두 페이지 읽어보는 순간이 가장 몰입도 있게 빠져드는 순간임을 아는 이들이 있다. 책의 냄새와 책장을 넘기는 소리 속에 편하게 앉아 오롯이 책에만 몰두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기쁨과 벅참을 아는 이들.

동네 곳곳에 자리한 책방들은 그러한 이들을 위한 아지트이자 사랑방이다. 책과 함께 차나 맥주를 즐기거나, 아예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책을 읽다 잠드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깊어가는 가을, 이번 주말은 동네 책방으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지.

◆지금, 여기에서 책 읽으며 커피 한 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친다. 경상감영공원 주변을 자세하고 샅샅이 보려 하는 자에게만 허락된 서점, 바로 차방책방(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60)이다. 책방과 카페를 겸하는 이곳에 들어서면 가판에 다양한 책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책은 역시나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그것이다. 가판대를 지나 책장 한 칸을 지나면 널찍한 테이블에 또다른 책들이 각각 표지를 드러내며 놓여져 있다.

책상에 올려진 책들은 책은 시와 소설, 비평 산문 등 문학책과 비문학책들이다. 시기마다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차방책방 사장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기자는 선우은실 작가의 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을 골랐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카페가 있다. 구매한 책을 커피와 함께 읽어야지.

차방책방을 운영하는 이재은, 이재진 씨. 자매인 이들은 2016년 이곳을 열었다. 차방책방은 말 그대로 한 공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과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한 데 모여있는 곳이다. 한 사람은 책을 매개로 손님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다른 한 사람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원했기 때문. 이 씨는 "'동생의 취향이 다르고 내 취향이 다르지만 각자의 취향을 잃지 않으면서 잘 연결되는 곳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차방책방을 차렸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독립서점 차방책방.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통유리 문이 활짝 열려있다. 마치 언제든 들어와서 머물러 달라는 듯이. 한소연 기자
대구 중구 독립서점 차방책방.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통유리 문이 활짝 열려있다. 마치 언제든 들어와서 머물러 달라는 듯이. 한소연 기자

이곳은 '지금, 여기'라는 큰 주제 아래 운영된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말들로 쓰여진 책들을 책방에 온 손님들에게 소개한다. 카페 음료도 현재 계절에 먹을 수 있는 메뉴들로 계절마다 다르게 준비된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담으므로 책장 한 켠에 꽂혀있는 소설은 한국 소설이 대부분이다. 외국 소설도 있지만 그런 경우 한국 여성 번역가들이 참여한 책이 많다.

비문학 코너에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책들이 다수다.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으면서도 지금 우리가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제들로 책을 진열해뒀다. 그것이 여성인권 등에 대한 것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이 씨는 "나는 여성이고, 여성으로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페미니즘에 연관된 책들로 책장을 채우게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영상 이론을 다루는 책들도 그와 비례한 양으로 마련돼있다. 근처 독립 영화관 '오오극장'과 가까워 영화인들과 영화광들에게 좋은 안식처가 된다.

차방책방 운영자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든 취향이 안전해지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담은 책 모임, 공연, 영상회가 이따금씩 열린다고 하니 때를 맞춰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대구 동구 심플책방의 입구. 최현정 기자
대구 동구 심플책방의 입구. 최현정 기자
심플책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최현정 기자
심플책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최현정 기자

◆북맥, 북칵테일 즐기는 공간

각국의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한 동대구역 인근 먹거리 골목을 지나다보면 식당과 식당 사이에 위치한 '북스토어' 네온사인이 눈길을 끈다. 이런 곳에 책방이 있다니.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심플책방(대구 동구 동부로34길 4 지하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책방 벽면에 전시된 레트로 포스터들과 각종 엽서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 구매 가능한 제품들로 이곳의 2호점인 봉산동 그림 편집숍 '미확인'에서도 판매 중이다. 여기에 코 끝엔 인센스 향이, 귓가엔 시티팝 음악이 더해져 감각적으로 구성한 공간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판매 중인 도서를 살펴보면 유명 소설부터 흥미로운 제목의 에세이, 독립 출간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20년부터 책방을 운영해온 구연일 사장은 "좋은 내용의 문학 장르, 내용에 걸맞는 아름다운 표지,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는 가격.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큐레이션을 지향한다"며 "고정으로 가는 책들도 있지만 보통 2주 간격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전했다.

심플책방의 전경. 벽면의 레트로 포스터와 엽서도 판매하고 있다. 최현정 기자
심플책방의 전경. 벽면의 레트로 포스터와 엽서도 판매하고 있다. 최현정 기자
심플책방의 특징인
심플책방의 특징인 '책맥'. 심플책방 인스타그램 캡처

책방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레몬'과 '라임'이는 이곳이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하게 된 아이들로 손님들이 책방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판매 도서 중 고양이가 상처를 낸 책은 따로 모아 반값에 팔고 있는 점도 이곳만의 귀여운 포인트다.

사장님이 읽은 책들을 공용 도서로 구비해 놓았기 때문에, 도서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음료와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맥주와 칵테일, 하이볼 등 주류도 판매하고 있어 '북맥'(Book+맥주)과 같은 재밌는 경험도 가능하다. 책방의 여러 칵테일 관련 서적에서 알 수 있듯, 피치 크러쉬·진토닉·롱 아일랜드 아이스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공간에서는 소소하지만 재밌는 행사들도 함께 이뤄진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음 달에는 책방 손님들을 대상으로 엽서 디자인 공모전을 계획 중이다. 당선작은 책방에서 직접 제작해 손님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대구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여행자의 책 전경. 이연정 기자
대구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여행자의 책 전경. 이연정 기자
여행자의 책 내부. 벽면에는 서점이 선정한
여행자의 책 내부. 벽면에는 서점이 선정한 '36인 작가의 방' 책장이 놓여있다. 이연정 기자

◆북스테이하며 책 매력에 흠뻑

책 속에 흠뻑 빠져 마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온 듯한 기분을 아는지. 여행자의 책(대구 동구 불로동 1000-51)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여행이 시작된다는 기쁨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만들어진 서점이다. 대구국제공항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하루에도 수십 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리가 더욱 마음을 설레게 하는 효과음이 된다.

상상해보자. 괜스레 센치해지는 어느 가을 날 이곳을 방문한 당신은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벽 한 켠을 가득 채운 '36인 작가의 방' 책장을 먼저 발견한다. 발터 벤야민부터 김영하까지, 서점이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작가 36명을 골라 그들에게 방 하나씩을 내어주듯 책장 한 칸마다 이름이 적혀있다.

눈을 돌리면 '대구' 책장이 눈에 띈다. 봉준호 영화감독, 현진건 소설가, 이상화 시인, 김수환 추기경 등 대구 출신 인물들에 관한 책을 모아뒀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슬그머니 말을 건네는 박주연 대표. "공항이 가깝다보니 타지 사람들이 많이 찾고, 그들이 이곳을 대구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기도 해요. 대구 사람을 통해 대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런 책장을 마련했어요."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테이블에 앉아본다. '너무 재밌잖아? 아, 좀 더 편하게 누워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박 대표에게 슬쩍 귀띔하면 된다. "위층 공간 비었나요?"

여행자의 책은 '북스테이' 공간이 마련돼있다.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개념이다. 책방지기가 엄선한 책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책에 둘러싸여 책을 읽다 잠드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자의 책 내부 모습.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의자가 많이 마련돼있다. 이연정 기자
여행자의 책 내부 모습.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의자가 많이 마련돼있다. 이연정 기자
대구 출신 인물과 관련한 책을 모아 놓은
대구 출신 인물과 관련한 책을 모아 놓은 '대구' 책장도 있다. 이연정 기자

이곳은 이외에도 일 년 내내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마치 서점처럼,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음력 절기마다 독서문화행사를 진행한다. 이름도 재밌다. 동지에는 '책 읽는 동지를 찾습니다', 대보름 '귀밝이책', 식목일 '책 심기' 등이 그것이다. 사람이 끊이지 않는 활동들이 이어지다보니 이곳은 중고물품 교환이나 반상회 등이 열리는 동네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새로운 고객의 유입이 뜻밖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고. 박 대표는 "아저씨 한 분이 투박한 말투로 '한강 줘보이소'라고 하시더라. 한강을 비록 책 이름으로 알고 있더라도, 어쨌든 서점을 찾아 책을 사고 읽으려하는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 같아 기뻤다"며 "'한강의 범람'으로 물이 평소 닿지 않던 메마른 곳까지 가닿은 느낌이다. 전 국민을 움직인 이 물결이 기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의 기쁨과 고마움, 내 자신이 달라진 듯한 느낌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거든요. 나아가 동네에 어떤 서점이 있냐는 물음이 곧 문화 척도의 가늠자가 되는 날이 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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