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특정 직업을 체험하거나 자신의 경험치를 투영하기도 한다. 한 때 김기덕의 영화를 불편하게 생각한 이들이 '감독이 해본 짓'이라고 폄한 일. 윤종빈이 호스트바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살려 '비스티 보이즈'를 만든 것이나, 임상수의 '눈물' 촬영 당시 불량청소년 캐릭터 탐구를 위해 조감독이던 최동훈이 영등포 육교에 좌판을 펴고 선글라스 장사를 한 일은 유명하다.
작가도 신작 준비작업으로 오랜 기간 취재를 한다고 들었다. 사전취재가 정교할수록 글은 단맛이 날뿐더러 잘 읽히고 머리에 쉽게 그려질 터다. 우신영은 어느 쪽일까. 경험일까 취재의 힘일까, 궁금하리만치 흥미로운 소설을 만났다. 그것은 일찍이 소설에서 아니 통속 에세이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통찰이었다. 감각적이고 시의적절하지만 오래된 미래 같은. 단지 직조 능력의 차원이 아닌 사회구성원 공통의 경험을 소환하는 능력 같은 것.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은 선물이 될 수 있어도 20킬로 쌀 한 포대는 선물이 못 돼. (중략) 선물의 세계에선 무용한 게 유용하고, 유용한 게 무용하다니까."(73쪽)
"주니의 손목 위에 채워진 검은 에르메스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SA급 가품이었다. 가짜는 다 티가 났다. 아니, 티를 냈다. 그건 너무 명확해서 딱하기까지 한 일이었다."(121쪽)
"일과 사람에 치일 때마다 홧김에 사들이는 것이 적지 않았다. 하나하나는 싸구련데 청구일이 되어 보면 카드값에 눈을 비볐다."(131쪽)
"양념장 없인 먹기 심심한 두부부침 같은 딱 평균치의 얼굴"(135쪽)
벽도 가짜, 스릴도 가짜, 상승과 하강도 모두 가짜인 실내암장이 시시해진 남자는 자연이 없는 도시의 65층 와인 바에서 자연스런 인위를 보고, '시티-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 곧 그네비계를 타고 하강하며 유리를 닦는 남자를 본다. 작가는 가상의 시공간이 아닌 2024년 송도신도시를, 그 도시의 오크우드 호텔을 특정해 배경으로 삼는다.
프롤로그는 이상하리만치 평범하고 지루하다. 글 깨나 쓴다는 이들이 만들어낸 문장의 관성적 조합처럼 다가온다. 그만 읽을까, 싶은 마음을 견뎠다. 1장을 지나면서 인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를 찔렸다. 비현실적인 현전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리얼리티가 생생해지는 흡인력이다. 정이현과 김애란의 교집합을 보는 듯했다.
작중 인물의 세계관은 정확히 지금, 여기를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자기성찰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허둥대는 남자와, 자기기만에 빠진 여자가 이루는 이익공동체의 집합체에 다름 아니다. 생선과 칼국수 국물의 비린내를 기억에서 씻어내려는 남자의 욕망이 우아하고 고상한 아내의 비릿함과 합체하는 것. 소설의 시작이고 끝이며 전부이다.
작가가 그리는 도시의 초상은 그가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는 "현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돈과 성(性)"의 총합이다. 요컨대 돈과 성이 교차하는 몸의 이야기이고, 그 몸이 몸담은 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 도시에서 몸값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군상의 이야기다.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의 '시티-뷰', 달큼하면서 비릿한데 맛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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