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뜬 달밤 홀로 대숲에서 금(琴)을 연주하는 한 남성을 그린 '죽리탄금도'는 중국 당나라 왕유의 '죽리관(竹裏館)'이 주제다. 자연 속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자족의 미학을 노래한 워낙 유명한 시다. 김홍도는 시 전문을 그림 속에 써넣었다.
독좌유황리(獨坐幽篁裡)/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앉아
탄금부장소(彈琴復長嘯)/ 탄금하며 다시 길게 휘파람 부네
심림인부지(深林人不知)/ 깊은 숲이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명월래상조(明月來相照)/ 밝은 달이 와서 비추어주네
단원(檀園)/ 단원(김홍도)
'죽리탄금도'는 시와 이 시를 주제로 한 그림을 판각해 나란히 편집한 '당시화보'를 활용했다. 그러나 부채꼴 화폭에 맞추어 바위와 잡목을 앞쪽으로 그려 넣은 것, 대숲을 시내로 두른 것, 다로(茶爐)와 차를 끓이는 다동을 넣은 것 등은 김홍도의 창작이다. 명월도 홍운탁월(烘雲托月)의 운치 있는 달로 그린 김홍도다운 근사한 명작이다.
주인공이 연주하는 악기는 연주 자세나 아랫부분이 잘록한 모양으로 보아 중국 고악기인 금(琴)이다. 금을 거문고로 번역하고, 거문고를 한자로 금 또는 현금(玄琴)으로 표기하지만 금과 우리 고유의 악기인 거문고는 다르다. 그 차이를 잘 알았던 음악 애호가 김홍도는 당시(唐詩)에 맞추어 금으로 그렸다.
왕유는 8세기 인물이지만 거문고는 18세기 조선 남성의 교양이었다. 김홍도는 '단원도'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자신을 그렸고, 그림 속 그의 방 안에는 비파도 걸려있다. 스승 강세황은 김홍도의 전기인 '단원기우일본(檀園記又一本)'에서 "음률에도 정통해 거문고와 피리의 곡조가 매우 절묘"하다고 했다. 김홍도는 거문고, 피리, 비파 등 세 종류의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강세황도 젊을 때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사방 벽에 산수화를 붙여 놓고 거문고 연주로 그림 속 산을 메아리치게 한다고 하며 자신의 서재를 산향재(山響齋)라고 했다.
19세기에도 남성들은 거문고를 연주했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은 친구들의 실력을 '임하필기'에 공개해 놓았다. 자신은 10년을 배웠는데도 초장(初章)의 이음(理音)도 이루지 못했지만 박종훈은 이음을 잘하고, 신재식은 상성(商聲)을 잘하고, 김흥근은 농현(弄絃)이 격식에 맞으며, 서기순은 조율(調律)이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원의 초상화를 보면 그는 중국 고금(古琴)을 소장하고 있었다.
금기서화(琴棋書畵) 중에서 금은 첫 번째로 꼽혔다. "거문고로 성정을 기르고 바둑으로 덕을 기른다"고 한 "금이양성(琴以養性) 기이양덕(棋以養德)"이라는 말이 있다. 거문고는 수양의 매개였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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