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한말 같은 한반도 운명, 윤 대통령 확고한 리더십 발휘할 때

러-우 전쟁, 미 리더십 교체, 북핵 고도화, 미중 패권 다툼 속 윤 정부 외교안보 동맹 다져야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외여건 변화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시진핑, 김정은, 푸틴, 윤석열 대통령, 트럼프, 이시바.
왼쪽부터 시진핑, 김정은, 푸틴, 윤석열 대통령, 트럼프, 이시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달 28일 "남의 나라 전쟁에 공격무기를 제공하면 우리가 그 전쟁에 직접 끼어드는 것 아닌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가정보원 요원 우크라이나 파견'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을 시사하자 강력히 반대한 것이다.

이 대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022년 2월 24일 "지구 반대편에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나라가 전쟁이 났는데 우리 주가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3년 5월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포탄 이송을 진행 중이라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신세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인데,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들어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국제 정세·국제관계가 대한민국 운명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모르는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다.

◆적이 이동하면, 내 위치는 저절로 바뀐다

전선에서 밤 사이 적군(敵軍)이 '유리한 위치'로 이동하면, 아군(我軍)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음에도 밤 사이 '불리한 위치'로 이동한 셈이 된다. 적이 더 강화된 무기로 무장할 경우 아군의 무기 성능에 전혀 변화가 없어도 저절로 낡은 무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우리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검토하는 것은 '적의 이동'에 대응해 '우리도 이동'하려는 것이다. 그걸 두고 '남의 나라 일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보복당할 수 있으니 가만히 있자'는 것은 앉아서 적에게 뒤통수를 내주자는 말이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핵잠수함 기술, 신형 전투기, 대공 미사일 체계 등을 지원 받을 것이다. 지금도 가공(可恐)할 파괴력을 보유한 북한의 군사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계기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한이 합동 군사훈련을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러시아와 북한이 한국 안보를 유린(蹂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 반대편 남의 전쟁이고, 우리와 아무 상관 없고, 우리가 신세 질 게 아무 것도 없는 나라의 일이란 말인가.

◆ 현실 외면· 내 중심 사고에 빠진 조선

조선말과 구한말(舊韓末·1897~1910년 8월 29일)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청나라, 러시아, 일본,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이 각축을 벌였다. 조선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오랜 세월 중국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양국 국력에 차이는 분명히 있었지만 강력한 서양에 비하면 비슷한 처지였다. 19세기 후반 양국 모두 세계 정세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나라 문을 걸어 닫는 쇄국정책(鎖國政策)으로 '우리끼리' 살아가겠다는 입장이었다.

세계 열강은 조선과 일본을 그냥 두지 않았다. 조선과 일본 모두 외세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했다. 불평등한 조약(조선-강화도 조약, 일본-미일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세계와 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고, 일본은 식민지를 거느리는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그런 결과가 나온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세계의 변화, 국제관계에 대한 분석과 이해력 차이에서 오는 양국의 대응능력(외교력)의 차이가 컸다.

▶ 서양 과학 우수성 인정한 일본

동인도함대 사령관이자 일본 특사로 임명된 미국의 페리 제독은 1853년 7월 8일 함대를 이끌고 일본 도쿄만의 우라가에 도착했다. 함대는 4척으로, 73문의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미국 함대는 도쿄만 일대를 측량하고, 함포(艦砲)를 발사하며 일본 정부(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에 통상을 위한 수교를 압박했다.

일본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페리 함대가 육지를 향해 함포를 쏘아대자 일본군도 페리 함대를 향해 대포를 쏘아댔다. 페리 함대가 쏜 포탄은 육지를 초토화했지만, 일본군이 육지에서 쏜 포탄은 페리 함대까지 날아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바다에 떨어졌다. 그 순간 일본은 깨달았다. 서양 대포의 위력, 서양 과학의 무서움을!

7개월 뒤인 1854년 2월 페리의 함대가 다시 일본에 함대를 이끌고 왔을 때 일본 정부는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을 맺고 문호를 개방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스펀지처럼 서양의 과학·기술·정치·군사·문화·제도 등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일본을 일어섰다.

▶ 패하고도 패한 사실조차 몰랐던 조선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선인들이 미국 상선을 불태운 사건을 빌미로 미국은 1871년 군함 5척과 1천200여 명이 병력으로 강화도를 공격했다.(신미양요辛未洋擾) 미군측은 공식 사과와 개항을 요구했고, 조선은 거부했다. 양측이 격돌했다. 이 충돌로 미군 전사 3명(부상 12명), 조선군 전사(53명~243명, 부상 24명), 익사 100여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각종 조선군 진지와 시설물 파괴, 약탈은 말할 것도 없다. 병력과 화력 모두 열세였던 조선군의 참패였다.

그럼에도 조선이 협상을 거부하자 미군은 수도(한양)을 공격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철수했다. 엄청난 화력 차이를 확인했지만 조선은 개항하거나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미군이 물러갔으니 '이긴 전쟁'으로 간주한 것이다. 서양을 배우기는커녕 서양과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 세상 변화를 이해하지도, 부응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남의 전쟁, 그러나 우리를 삼킨 전쟁

청나라와 일본은 1894년 우리나라 땅에서 전쟁을 했다. 우리의 바람이나 의지와 무관했다. 청일 양국은 아산 앞바다 풍도(豊島)에서 싸웠고, 평양에서 싸웠고, 압록강 어귀 해양도 앞바다에서 싸웠다. 우리 땅에서 자기네들끼리 싸웠고, 우리나라 사람을 부역(賦役)에 동원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조선은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독립국'이 됐다. 조선이 쟁취한 자주독립이 아니라 일본이 청나라를 몰아낸 결과였다. 그리고 16년 뒤, 조선은 일본 식민지가 됐다. 조선이 원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그렇게 만들었다. 조선이 국제 정세를 민감하게 살피지 못하고, 그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기에 외세가 마음대로 조선의 위치와 지위를 규정한 것이다. 남들끼리 하는 전쟁이 우리와 무관한 게 아니라 우리를 규정해버린 역사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긴 비결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에서 우월권을 확보했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러시아를 상대해야 했다. 당시 국력으로 보자면 일본은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본은 러일전쟁(1904년 2월 8일~ 1905년 9월)에서 이겼다. 국제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외교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 상대 약점 파악한 치밀한 전략

일본은 조선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협상 타결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우선 러시아의 전력을 치밀하게 파악했다. 유럽에서 극동까지 동원되는 러시아군이 약 10만 명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시베리아 철도는 미완성이었고, 단선이라 1개 대대를 뤼순(旅順)으로 보내는 데만 40여 일이나 걸렸다. 러시아 극동군의 전력은 고작 10만명 정도였지만 일본군은 약 25만명을 전선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일본은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완성하기 전에 가능한 빨리,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일본이 전쟁을 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은 전쟁을 감행했다. 선전포고에 이틀 앞선 1904년 2월 8일 러시아 제국 극동 함대를 공격했고, 9일 제물포항에서 러시아 전함 두 척을 공격했다. 그리고 2월 10일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했다. 러시아는 전쟁이 시작되고 8일이 지나서야 전쟁을 선포했다. 러시아군은 전쟁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한반도 북부에서 곧바로 철수했다.

▶ 외교로 교두보 확보하고 시작

일본은 전쟁에 앞서 외교전도 펼쳤다. 영국과 영일 동맹(1902년)을 맺어 '일본이 러시아와 싸울 때 다른 나라가 러시아 편을 들면 영국이 일본편으로 참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러시아가 독일이나 프랑스의 도움을 얻기 어렵게 됐음을 의미한다.

영국과 미국은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을 적극 지원했다. 1904년 4월과 1905년 5월 사이에 영국과 미국이 4차례에 걸쳐 일본에 제공한 총 4억 1천만 달러의 차관 중 약 40%가 일본의 전비(戰費)로 쓰였다. 영국은 표면상 '엄정중립'을 선언했지만 일본과 동맹국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러시아군의 병참을 끊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제3국의 석탄공급 및 원조제공 저지, 유럽과 아프리카에 러시아 함대의 기항 금지 등을 영국이 주도했다.

당시 러시아 주력 함대였던 발트함대는 유럽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동아시아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했다. 약 반년 동안 바다를 헤매며 쓰시마 해협으로 들어온 러시아 발트 함대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 연합 함대에 무참히 깨졌다.

중립을 지키겠다던 미국도 일본 편을 들었다. 루스벨트(Roosevelt, T.)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가 만일 삼국간섭 당시처럼 일본에 간섭할 경우, 즉각 일본편에 가담하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를 견제하고 싶어하는 영국과 미국의 의지를 간파한 일본의 외교적 승리였다.

일본은 러일 전쟁 승리로 대한제국 식민지화를 사실상 굳혔다. 당시 조선은 국제 정세에 무지하고, 무기력했기에 남들 싸움을 구경만 하다가 나라를 잃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의 일' 이라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국제관계에서 대한민국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조차 모르는 것이다. '동맹'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나라는 초강대국일지라도 약소국에 깨질 수 있음을 러일전쟁이 보여준다.

◆윤 대통령 외교·안보·세일즈에 역량 집중을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외교에 많은 공(功)을 쏟아왔다. 문재인 정부 때 완전히 경색된 한일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또 1959년 쿠바 사회주의 혁명 이후 북한만 지지해왔던 쿠바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 관계를 맺은 것도 큰 성과다. 국제정세 변화와 국제관계에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영향을 많이 받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대응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2기 트럼프 정부와 관계다. 트럼프 집권 1기에서 확인했듯이 그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국과 무역전쟁을 불사하고, 우방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 동맹국에 대한 과도한 안보 대가를 눈도 깜짝하지 않고 요구할 수 있다.

미국과 경제 및 안보에서 동맹을 맺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만큼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의 글로벌 무역 정책 기조와 향후 그가 북한과 새로운 핵 협상을 시도에 대응해 우리 이익과 안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밤을 새워 고민하고,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

일본 상황도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지난 달 총선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2009년 이후 15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는 일본 정계가 격량에 휩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총리로 재신임을 받았지만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예산안도, 법률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시바 내각은 강한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고, 한국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제 정세 변화 분석, 국제관계 개선 등 외교와 안보, 해외 세일즈에 지금보다 훨씬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치(각종 개혁, 경제)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내각과 국회에 그 역할을 상당 부분 맡기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치인들, 우리 국민들은 좀처럼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 안보와 경제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제 정세 변화와 국제관계이기 때문이다.

세계 속에서 동맹을 강화하고, 우방국을 늘리며, 비우호국과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는 작업은 우리나라 안보, 경제, 사회 안정 등에 그 어떤 국내용 정책 못지 않게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1년 365일 이어지고 있는 '이재명 대표 방탄' '김건희 여사 특검' 등 국내 정쟁에서 철저히 벗어나 세계 시장에서, 세계 전장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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