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립구국운동기념관 대구 건립을 추진하면서 대구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구국정신이 함께 주목받고 있다. 이 중 대표적으로 고(故) 김태련, 김용해 지사 부자(父子)의 이야기는 대구 3·8만세운동을 주제로 한 연극 '100년의 외침'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김태련 지사는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주민과 학생들을 동원해야 했는데, 김태련 지사는 기독교 신도들의 규합을 이끌어냈다. 또한 계성중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신명여학교·성경학교 학생들과 연락해 연합시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
이날 김태련 지사는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 주민 등 1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어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가지를 행진했다.
하지만 시위 도중 일본 경찰이 시위군중을 구타하며 검거하기 시작했고 이때 김태련 지사도 체포됐다. 함께 대항하던 아들 김용해 지사는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에 4월 13일 끝내 순국했다. 순국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옥중에서 아들의 부고를 듣게 된 김태련 지사는 옥살이를 하며 노역한 품삯으로 아들의 묘비를 세웠다. 김태련 지사는 아들의 무덤 앞에서 "너의 죽음은 장하되, 처절했던 최후는 잊을 수가 없다"며 오열했다고 한다. 비문에는 "기미년 3월초 의로운 피가 질퍽했나니, 아비의 괴로움에 찬 품삯으로 아침햇살 아래 이 돌을 세우노라"라는 글귀를 새겼다.
정부에서는 부자의 공훈을 기리어 1990·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대구에 위치한 국립신암선열공원에 부자가 나란히 안장돼 있다.
노수문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대구 3·8만세운동을 일으키면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민족적인 만세운동으로 발전하는데 김태련, 김용해 지사가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국선열들의 염원과 희생이 오늘의 독립국가를 이뤄낸 것"이라며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오늘날의 우리가 순국선열들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그분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1944년 일본군을 탈출하고 중국 중경의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한 광복군 요원 장언조 지사, 대구 계성학교 5학년 재학 중에 1919년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해 독립선언서 배포 만세운동을 선도하며 대구형무소에서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박태현 지사 등 많은 대구 출신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있다.
한편 제85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은 오는 17일 오전 10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된다. 순국선열의 날은 국권 회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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