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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의 연극 리뷰] 극단 산수유 김경빈 연출로 만들어진 <즐거운 우리집> '짠하면서도 웃음 포인트는 살아있어' 이영석, 홍윤희 배우의 완숙한 연기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즐거운 우리 집. 극단 산수유 제공.
즐거운 우리 집. 극단 산수유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즐거운 우리 집>(작, 김나영)은 가정폭력이 대물림되어 딸도 무기수가 된 가족의 이야기다. 딸의 눈치를 보는 지체 장애 엄마, 딸에게 미안함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버지, 가족이 되고 싶은 딸 미주가 극 중 인물이다. 1박 2일 '가족 만남' 집에서 세 가족이 함께하면서 폭력의 집으로 대물림된 이들의 가족사를 듣게 된다. 원룸 같은 공간에 40대의 딸 미주가 달라붙은 싸구려 꽃무늬 원피스를 불편해 보이게 입고 있고 아버지와 엄마가 장바구니를 가득 들고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족폭력 서사는 대체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발화된 사건을 투영하는 방식인데 <즐거운 우리 집>은 우울하지 않고 시종일관 이영석, 홍윤희, 좋은데 배우들의 연기로 웃음을 드러내는 게 무기다.

아버지(이영석 분)는 한때 아내를 폭력적 위계로 대하고, 70대가 되어도 감정조절이 안 될 때면 주먹부터 '휙휙' 휘두른다. 열일곱에 결혼한 아내(홍윤희)는 폭력 남편 영향으로 직장에서도 '욱'하는 급발진으로 2~3개월을 버텨내지 못하고 쫓겨나는 게 일상이 됐다. 폭력 환경에서 자란 딸 미주(조은데)는 살인으로 무기수가 됐다. 이러한 극 중 인물들의 삶의 분열과 캐릭터로만 보면 어두울 것 같은데 예상은 비껴간다. 세 가족은 사랑이 결핍된 온기를 투박한 방식으로 미안함을 드러내면서도 즐거운 집을 꿈꾸는 이들의 감정표현들이 웃음으로 뭉쳐진다. 주먹이 휙 올라가도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며 금세 기죽는 남편, "아버지는 미친놈이었어. 무서워서 찔러 죽여버리고 싶었어" 하면서도 여전히 남편을 편드는 아내이다. 아빠의 폭력이 대물림되어 무기수가 되어버린 미주도 어린 시절 즐거운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즐거운 우리 집. 극단 산수유 제공.
즐거운 우리 집. 극단 산수유 제공.

'행복한 집'이 될 수 있는 것은 화해와 용소로 가정폭력 상처로 굳어버린 내면의 치유라면, <즐거운 우리 집>은 화해 방식이 유쾌하다는 점이다. 연극은 폭력 가족이 되어버린 세 가족의 사연을 툭툭 들을 때는 아프고 미안해 지면서도 '즐거운 우리집'에서 살아가려는 세 가족으로 분한 극 중 인물들 감정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눈치 게임' 같은 대사들과 표정들이 웃음으로 가공되어 60분을 채운다. 너무 미안하면 고백이 서툴고 엉뚱해지는 식이다. 어린 시절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마지막 밤은 마룻바닥에 이불을 펴고 비좁게 잠을 자는 세 가족은 등을 돌려 뒤돌아 눕고, 천장을 쳐다보고, 몸을 뒤척여도 비로소 가족의 온기(사랑)로 폭력의 상처는 치유되고 행복한 집이 되어간다. 홍윤희 배우의 연기는 때로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남편한테 쏟아내는 감정은 배어있는 상처가 짠하게 아파지면서도 서투른 엄마가 될 때는 웃음까지 주고 있다.

이영석, 홍윤희 배우의 척척 감기는 대사의 밀도와 연기가 찐 웃음을 준다. 교소도 내 가족 만남의 집이지만 1박 2일 동안 만남의 집 하룻밤이 강남 자이 아파트나 한남동 '더힐'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즐거운 우리 집>이다.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에서 헤어지고 싶지 않아 엄마는 화장실에 숨고 아버지는 " 또 초대해 줄 거지?" 한다. 딸은 " 왜? 우리 집 마음에 들어" 하면 "응, 좋네. 여기 우리 미주가 있어서 그렇게 좋을 수 없다."라는 대사에서 비로소 세 가족이 살아온 균열의 집은, 온전한 집이 된다. 아쉬운 것은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화해 방식이 비로소 이불을 펴고 세 가족이 함께 잠을 자는 극 중 장면에서 연출적으로 선명히 드러났으면 어땠을까.

김경빈 연출은 2018년도에 삼인 삼색 "완빤치 쓰리 강냉이 세 명의 신진 연출전"워크숍무대에서 이근삼작 원고지로 가능성을 보인 뒤 희곡을 쓰고 연출한 <마산>을 공연했다. 이후, 이영석·박상종 배우의 '라스트 씨어터 맨' 연출을 했다. <즐거운 우리 집>은 2023년도 제6회 노작홍사용 창작 단막극제에서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 작품이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즐거운 우리 집. 극단 산수유 제공.
즐거운 우리 집. 극단 산수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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