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북한 참전 우크라이나, 몽골 침략 흑사병 진원지

크림반도 남쪽 흑해 연안 휴양도시 얄타.2014년 러시아가 점령하면서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돼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다. 1945년 2월 한국독립을 재확인한 얄타회담 장소다.
크림반도 남쪽 흑해 연안 휴양도시 얄타.2014년 러시아가 점령하면서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돼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다. 1945년 2월 한국독립을 재확인한 얄타회담 장소다.

우크라이나 전쟁. 2024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3년을 눈앞에 뒀다. 막대한 인명 피해 앞에 인적자원이 고갈된 탓일까? 러시아가 북한군을 끌어들였다. 머나먼 동유럽으로 간 북한군. 흑해 연안으로 동양인이 전쟁을 치르러 간 것은 북한이 처음이 아니다. 800여 년 전 13세기 몽골이다.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동유럽에 세운 킵차크 칸국은 중세의 대재앙 흑사병의 진원지다.

이탈리아 제노바 역앞 콜럼버스 동상. 제노바는 콜럼버스의 고향이다.
이탈리아 제노바 역앞 콜럼버스 동상. 제노바는 콜럼버스의 고향이다.

◆해양제국 제노바, 콜럼버스 고향

먼저 이탈리아 북부 해양도시 제노바로 가보자. 제노바 기차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면 낯익은 인물의 동상에 적잖이 놀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받아 1492년 인도로 가려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현대 서양사 개막의 주역. 그는 스페인 출신이 아니다. 제노바 출신이다. 제노바에는 콜럼버스 생가도 오롯하다. 제노바는 중세 해상 교역으로 번영을 누린 공화국이었다. 1797년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붕괴될 때까지 무려 800년 가까이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무역거점을 마련하고 해양무역 공화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이스탄불 골든 혼 북단에 자리한 갈라타 타워. 1348년 제노바가 건립했다.
이스탄불 골든 혼 북단에 자리한 갈라타 타워. 1348년 제노바가 건립했다.

◆제노바 무역거점, 이스탄불 갈라타 타워

해상강국 제노바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을 찾아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가보자.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금각만(金角灣, Golden Horn) 북쪽 언덕에 우뚝 솟은 갈라타 타워. 탐방 명소 갈라타 타워는 제노바 공화국이 1348년 지은 무역거점이다. 높이 67m로 동로마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높았다.

제노바는 경쟁 해양무역 공화국 베네치아와 치열하게 다퉜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동로마 제국의 멸망과 재건이다. 1204년 베네치아가 주도한 4차 십자군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같은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갔다. 동로마 제국을 무너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라틴제국을 세웠다.

제노바 상인들은 망명 동로마 정부를 도와 1261년 라틴제국을 무너트리고 동로마 제국을 부활시켰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우위를 점한 제노바 상인들이 1348년 세력 과시용으로 만든 무역거점이 갈라타 타워다. 제노바의 무역 활동은 콘스탄티노플을 넘어 흑해 북단 크림반도로 간다.

몽골초원 카라코룸. 징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의 수도
몽골초원 카라코룸. 징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의 수도

◆징기스칸의 큰아들 주치의 영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남쪽에 붙은 영토다.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하면서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돼 러시아가 지배한다. 크림반도 남쪽 흑해 연안 휴양도시 얄타는 1945년 2월 한국독립을 재확인한 얄타회담 장소다. 크림반도로 몽골인이 처음 침공해 온 것은 1222년이다.

징기스칸이 아들들을 데리고 감행한 1차 서방 원정(1219년-1225년) 시기다. 몽골 제국 최고 장수로 평가받는 수부타이가 본진에서 갈라져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거쳐 크림반도까지 유린한 뒤,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1220년 징기스칸이 건립)으로 귀환해 유럽 사회에 대해 알렸다.

징기스칸은 첫째 부인 보르테가 낳은 4명의 자식에게 제국을 나눠 통치하도록 한다. 큰 아들 주치에게 준 영토는 수부타이가 유린했던 몽골 초원 서부 즉 오늘날 카자흐스탄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흑해의 우크라이나 지역까지다. 그런데 주치가 이 지역에 대한 확고한 통치권을 확보하기도 전 그만 아버지보다 6개월 앞서 1227년 죽는다. 통치권은 주치의 둘째 아들 바투에게 넘어갔다.

징기스칸 초상화. 몽골 카라코룸 박물관
징기스칸 초상화. 몽골 카라코룸 박물관

부다페스트와 다뉴브강. 강 서쪽은 부다, 강 동쪽은 페스트다. 1242년 1월 몽골군 침략에 피로 물들었다.
부다페스트와 다뉴브강. 강 서쪽은 부다, 강 동쪽은 페스트다. 1242년 1월 몽골군 침략에 피로 물들었다.

◆주치의 아들 바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킵차크 칸국 설립

바투는 1235년 몽골 제국 2대 대칸 오고타이(징기스칸의 셋째 아들)의 명을 받고 2차 서방 원정을 감행한다. 바투는 명장 수부타이와 함께 1237년 우크라이나 지역 통치권을 확고히 한다. 이어 1241년 폴란드 남부를 침공해 격파한 뒤, 헝가리로 진출해 1242년 1월 부다페스트를 함락시켰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경계로 강의 서쪽은 로마 시대부터 발전한 부다, 동쪽은 페스트다. 1242년 1월 얼어붙은 다뉴브강은 몽골의 대살륙에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2대 대칸 오고타이가 갑자기 죽으면서 몽골의 서방원정 말발굽은 이탈리아 침공을 앞두고 맘춰섰다.

바투는 이때 오늘날 러시아의 아스트라한 주 볼가강가에 수도 사라이를 건설하고 킵차크 칸국을 세웠다. 서쪽으로 헝가리부터 몰도바, 우크라이나,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 카자흐스탄까지가 영토다. 1246년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서 치러진 몽골 3대 대칸 구육(징기스칸 손자, 오고타이 아들) 즉위식에 모스크바 거점의 블라드미르 대공국 야로슬라브 2세가 축하사절로 참석한 것은 당시 몽골제국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피사 사탑과 두오모(성당). 제노바와 경쟁하다 패한뒤, 피렌체에 병합된 비운의 해상 교역국.
피사 사탑과 두오모(성당). 제노바와 경쟁하다 패한뒤, 피렌체에 병합된 비운의 해상 교역국.

◆제노바, 피사 물리치고 흑해 상권 장악

이 무렵 제노바는 이탈리아 반도 내 피사 공화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지중해 코르시카 섬과 흑해 상권을 놓고 두 해상공화국은 1283-84년 대혈전을 벌였다. 이때 피사는 시민군 1만 4천명 가운데 절반이 숨지는 참사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끝내 1406년 피렌체 공화국에 병합되고 말았다. 아르노강을 통해 피사를 거쳐 바라로 나간 내륙국가 피렌체는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피사를 물리친 제노바는 흑해로 무역의 손길을 뻗쳤다.

크림반도 케르치 해협의 중심도시 케르치.
크림반도 케르치 해협의 중심도시 케르치.

◆제노바, 크림반도 포세도니아에 신민도시 카파 건설

흑해 크림반도는 1240년대 이후 몽골 제국 킵차크 칸국의 영향에 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진출했던 교역의 중심지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중심 도시 케르치에 가보니 지금도 그리스 신전 유적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케르치에서 서쪽으로 100km 지점의 흑해 연안에 오늘날 페오도시아(Feodosia)라는 도시가 자리한다.

그리스인들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이름을 따서 포세도니아(Posedonia)로 명명한 도시다. 제노바는 킵차크 칸국에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1266년 포세도니아를 차지한 뒤, 이름을 카파(Caffa)로 바꾸고 무역거점으로 발전시켰다. 비단, 향신료에다 특히 노예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크림반도 케르치에 있는 그리스 신전.
크림반도 케르치에 있는 그리스 신전.

◆킵차크 칸국 자니벡 칸, 카파에 흑사병 전파

1340년대 킵차크 칸국과 제노바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1345년 킵차크 칸국 자니벡 칸이 카파를 공격했다. 강력한 저항에 고전하던 자니벡 칸은 기상천외한 작전을 폈다. 생물학전. 1346년 전염병 사망자를 투석기에 넣어 카파성 안으로 날려 보냈다.

이탈리아의 가브리엘레 데 무씨가 1348년 기록한 라틴어 문서 『1348년에 발생한 병 또는 대사망의 역사』에 흑사병 전개 과정이 소상히 나온다. 몽골이 던진 시신에 전염된 카파의 제노바 상인은 흑해 남부 트라브존, 지중해의 시칠리아 메시나로 이동했고, 가는 곳마다 잇따라 환자가 발생했다. 이어 1347년~1348년 전유럽이 초토화됐다. 대재앙 흑사병이다.

쿠빌라이 초상화. 징기스칸의 손자이자 공민왕의 5대조 할아버지. 몽골 카라코룸 박물관.
쿠빌라이 초상화. 징기스칸의 손자이자 공민왕의 5대조 할아버지. 몽골 카라코룸 박물관.

◆자니벡 칸과 고려 공민왕, 둘 다 징기스칸의 7대손

자니벡 칸은 징기스칸의 7대손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한 몽골 제국의 서쪽 끝 킵차크 칸국 자니벡 칸이 재임하던 시기(1342년~1357년) 제국 동쪽 끝의 속국 고려왕은 공민왕(1351년~1374년)이다. 고려 공민왕도 징기스칸의 7대손이다. 항렬이 같다. 징기스칸의 큰아들 주치가 자니벡 칸의 6대조 할아버지다. 징기스칸의 넷째 아들 툴루이가 공민왕의 6대조 할아버지다.

툴루이의 아들로 중국을 정복하고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의 딸은 고려 충렬왕과 결혼했다. 그 아들 충선왕의 증손자가 공민왕이다. 쿠빌라이는 충선왕의 외할아버지이자 공민왕의 5대조 할아버지다. 북한도 고려의 후예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군 참전을 둘러싼 역사의 아이러니다. 조속한 종전과 평화를 기원해 본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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