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67> 로제와 윤수일, '아파트'의 문화지리학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앨범 커버

노래는 창조의 산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의 산물이 된다. 클래식 음악은 현실을 그대로 다루기보다 거리를 두는 반면 대중가요는 노래의 문법을 통해 대중의 생활 방식과 태도, 시대 정신을 직접 반영한다. 노래는 시대 감정을 극화한다. 시대의 환부를 어루만지고 치유해 온 것도 노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온갖 사건과 사연들이 노래 한 곡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서 노래는 요약이며 통찰이다.

블랙핑크 로제가 미국의 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덩달아 40여 년 전에 나온 윤수일의 '아파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만큼 아파트라는 주거 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예는 드물다. 동시에 획일화, 규격화, 불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고급화와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상자, 관, 닭장 등으로 불리며 경제성과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거대한 콘크리트 성벽을 이룬다.

아파트는 사적 공간을 확보하며 사생활 보호, 개인정보 보호, 익명성이라는 규칙을 만들어냈다. 또한 수시로 팔고 사면서 정착하지 않는 문화와 소통 단절의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 문화를 양산했다. 로제는 아파트 게임을 노래로 만들었다. 다소 저급한 소재와 주제는 가볍지만 유쾌하다. 아파트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방식은 매머드급의 대단지와 아파트의 고층화, 고밀화를 눈에 보일 듯 회화적으로 들려준다. "이렇게 원하는데 넌 아닌 거야?/이렇게 필요한데 넌 아닌 거야?/잠은 내일 자고 오늘 밤은 미친 듯이 놀자/넌 그냥 날 만나러 오면 돼 아파트 아파트" 통속적인 가사는 오락성을 강조하며 대중 속으로 침투하고 공감을 일으키며 노래의 상품 가치를 높인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딩동! 하는 벨소리로 시작한다. 아파트에서 나를 기다리는 너는 익명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이들의 사랑은 정신적이기보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으로 느껴진다. 아파트가 욕망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물리적 역할을 한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에 나타나듯 도시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적절한 시기에 팔고 움직여야 득이 되는 방식은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다시 또 찾아왔지만/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쓸쓸한 너의 아파트"는 진정성 없는 사랑을 통해 도시인의 삭막한 삶과 허무 의식을 보여준다.

대중가요는 대중의 사고와 언어, 공통의 욕망을 빠르게 파악한다. 아파트는 198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나라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러한 점에서 로제와 윤수일의 '아파트'는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기대를 충족하는 최고의 노래라 할 수 있다. 40여 년의 격차가 있지만 두 곡의 '아파트'는 자본주의의 단면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정서와 삶의 맥락을 짚어낸다. 로제의 노래가 말초적 감각으로 아파트에 집착하는 사회 현상과 젊은 세대의 삶의 총체적 맥락을 건드린다면, 윤수일의 노래는 도시인의 삶을 표피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흥을 부추기는 댄스곡이나 응원가로 불렸다. 도시는 생성과 변화의 법칙이 작용하는 유동적인 공간이다. 두 곡은 아파트를 소재로 대중가요의 문화지리학을 보여준다. 폭등해 온 서울의 아파트 시세만큼이나 대중의 호응도 크다.

아파트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 코리아
아파트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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