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남권의 달성군은 신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국가산업단지와 대규모 주거단지 등이 조성됐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마을들이 곳곳에 분포해있다. 이곳들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를 겪는 가운데 대중교통 서비스도 열악하다. 도심 속 외딴 섬처럼 고립돼 있다. 의료 접근성과 식료품 확보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오지 마을들을 찾아 주민들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장 보기가 '큰 모험', 교통사고 위험까지
"장을 보려면 전동휠체어를 타고 30분이니 걸려. 차가 씽씽 다니는 도로도 대여섯 번이나 건너야 해 요즘은 엄두도 못내."
지난달 2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2리에서 만난 박모(84) 씨와 김모(77) 씨, 두 어르신은 시내버스 이용이 불편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마을 주민에게 외출은 큰 모험과 같다.
김 씨는 "나는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지만 나이가 더 많은 노인은 버스 타러 나가지도 못한다"며 "그저께도 전동휠체어로 시장에 다녀오다가 큰 도로의 건널목에서 차와 아찔하게 마주쳤다. 너무 놀라 한동안 서 있었다"고 말했다.
쌍계2리는 테크노폴리스로 끝자락에 인접한 마을이다. 주민들이 도심으로 나가기 위해선 버스 한번 타기 어려운 달성군의 대표적인 교통오지 중 한 곳이다. 지난 2019년 농촌형 수요응답형택시 사업인 '달성 행복택시'가 도입됐지만 2021년 마을 입구 길 건너 급행 8번(-1)이 지나는 정류장이 생기면서 행복택시 대상지에서 제외됐다.
행복택시 대상지는 달성군 조례에 따라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거나 인접 시내버스 정류장과의 거리가 500m 이상인 교통취약지역 마을이다.
급행 8(-1)번이 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지만, 주민들에게 불편하다. 마을회관에서도 10분 넘게 걸어야 해서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조 이동 수단을 쓸 경우는 더 힘들다. 장을 보고 짐까지 있으면 더더욱 버스 이용은 무리다. 일반 택시를 부를 순 있지만 현풍시장 기준으로 왕복에 1만2천 원가량이 든다. 교통비치고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박 씨는 "현풍시장에 가려면 마을 앞 정류장(급행8번)이 아니라 700~800m 떨어진 다른 정류장(655번)을 이용해야 한다. 정류장까지 20분 이상 걸어야 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달성군 구지면의 오설리‧징리도 대표적인 교통오지다.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설리의 경우 달성4번이 다녔지만 2017년 4월부터는 운행이 중지됐다. 대신 달성3번이 있지만 현풍 오일장이 열릴 때만 한시적으로 다닌다. 이곳 버스 정류장과 마을회관까지는 도보로 20분이 넘는다. 길도 차 두 대가 간신히 교행할 만큼 좁고, 경사도 심하고, 가로등도 없어 야간에 걷기 위험하다.
오설리 주민 백상국(68) 씨는 "어르신들이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정류장까지 걷기 힘들고,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위험하다"며 "그나마 여기는 행복택시라도 들어오니 다행이다"고 말했다.
◆버스 놓치면 '4시간 대기', 옆 마을 가기도 힘들어
이달 6일 정오쯤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앞에는 현장 체험학습을 온 학생 20여 명이 이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자가용차를 이용했다. 학생들은 단체로 관광버스에 올랐다. 2시간여 동안 시내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1리는 달성3번이 현풍 오일장에만 운행한다.
버스가 없어 옆 마을인 도동2리까지는 걸어야 한다. 잡풀이 무성한 길을 30분 정도 이동하면 도동2리 마을 비석이 나온다. 차나 오토바이 등 개인 교통수단이 없으면 마을끼리 왕래가 어렵다.
성용수 도동2리 이장은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도동서원을 보러오는 외지인들도 버스가 없으니 불편해한다. 무엇보다 방문객 접근이 쉽지 않은 탓에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 크다"고 했다.
도동1‧2리는 그나마 행복택시가 들어온다. 반면 행복택시 대상지가 아닌 마을 주민의 교통 불편은 더 크다.
이달 4일 찾은 유가읍 본말2리는 달성군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있다. 경남 창녕군과 맞닿은 골짜기 마을이다. 마을 중턱에는 달성6번 종점이 있다. 매일 6회 운행하는 이 버스는 현풍 읍내까지 1시간 30분~2시간이 걸린다. 승용차 소요 시간(25분)보다 3~5배가 더 걸리는 셈이다.
본말2리 임모(85) 씨는 "시내버스는 출발 간격이 2시간이어서 한번 놓치면 외출을 포기해야 한다. 버스는 동네마다 다 들르기 때문에 장을 한번 보려면 온종일 걸린다. 읍내에 나갈 땐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배를 쫄쫄 굶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육신사와 사육신 기념관이 있는 하빈면 묘1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곳 주민들은 병원 진료 등을 위해 마을 나서는 것이 어렵다. 성서2번이 있지만, 배차간격이 짧게 1시간에서 길게 4시간까지로 길다.
묘1리 이모(79) 씨는 "버스가 제때 도착하지 못할 때는 날이 덥든 춥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오후에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까지 4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면 1만원이 넘는다. 최근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버스를 놓칠까 싶어 중간에 치료 끝내고 급하게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달성군 버스, "서문시장은커녕 관문시장도 한 번에 못 갈 것"
내년 2월로 예정된 대구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을 앞두고 달성군의 대중교통 취약지 주민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지난달 25일부터 달서구와 달성군을 시작으로 시내버스 노선 개편 설명회를 진행했다. 10년 만의 노선 개편을 앞두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앞서 대구시 조사에 따르면 옥포‧유가읍, 구지면 등 달성군의 교통취약지역 민원은 노선 신설‧변경, 배차간격 단축 순으로 요구가 높았다.
이번 개편안(달성군 관련)을 보면 국가산단과 동대구역을 잇는 직행2번 신설이 있지만, 테크노폴리스와 설화명곡역을 잇는 급행4번은 폐지될 예정이다. 아울러 급행2번과 240번, 304번, 449번 등 가창면 일부 구간의 축소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달성 2번의 경우 기존 대곡역~관문시장 구간이 폐지되고, 성서2번도 하빈면‧다사읍에서 서문시장으로 갈 수 있는 구간이 없어지는 안이 제시됐다.
이에 대해 주민설명회에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특히 교통 복지가 아닌 수요에만 집중한 노선 감축에 대한 불만들이 이어졌다.
논공읍 노이리에서 대표로 참석한 한 주민은 "농촌지역은 대부분 노인이 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다. 고령자들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 이용할 수밖에 없다. 버스 이용 수요만 보기보다는 교통복지 차원에서 약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성군의회에서도 농촌지역 교통복지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도원 달성군의원은 "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교통약자들이다. 600번의 경우 서문시장까지 갔다가 관문시장까지로 축소되더니 이젠 진천역에서 노선이 짤렸다"며 "교통약자들은 환승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은영 달성군의회 의장은 "달성군 주민들이 이용하는 노선이 축소되는 경향이 많다. 일부 신설 구간이 있지만 서부정류장 둥 도심과 이어지는 노선은 유지해야 한다. 수요만 보면 달성군은 버스 노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버스준공영제의 의미와 지역민 불편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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