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박상전] '경산 반도체'

박상전 편집국 대구권본부장 겸 경산지역담당
박상전 편집국 대구권본부장 겸 경산지역담당

삼성전자 주식이 지난주 4만원선을 찍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겼다. 가까스로 회복선을 타고 있으나 국내 최대 우량주의 폭락으로 주식 시장은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다. 시총 300여조원에 달하는 '황제주'의 몰락은 반도체 수출 부진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수요 부진과 재고 과잉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수요가 안정화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당분간 약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져온 삼성전자가 주춤하는 사이 경쟁사인 TSMC사는 비메모리, 특히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에서 점유율을 잠식하면서 꾸준히 성장 중이다. 인텔과 엔비디아도 지난해 기준 실적과 매출면에서 삼성을 추월했다. 삼성을 우러러만 보던 기업들의 반전은 모두 AI(인공지능)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분야에서의 선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도체는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능이 단순하고 표준화가 돼 있어 대량 생산에 적합한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각종 전자제어 기술 등을 집약한 시스템으로, 개발은 어렵지만 소비자 요구에 맞춰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소품종 대량 생산과 다품종 소량 생산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된다.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대부분 비메모리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 분야는 전체의 60%(2021년 기준)를 차지한다. 이런 블루오션에 도전하기 위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전향적 행보는 물론이고 정부의 지원책도 시급한 상황이다.

뒤늦게 문제의식을 깨달은 정부는 비메모리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게 '파이밸리 프로젝트'로 출발한 미래모빌리티 시스템반도체 기반 조성 사업이다. 비메모리 설계 기구인 '팹리스 센터'를 대구에 두고 주요 생산기지를 경산에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팹리스 센터와 관련해서는 내년도 대구시 국비 예산에 '대구형 반도체 팹 구축' 명목으로 157억원이 잡혀 있다. 원희룡 전 국회의원은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말 경산을 찾아 "수도권에는 메모리반도체, 비수도권에는 비메모리 반도체로 특화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연구원을 경산에 설치할 수 있도록 100% 밀어 드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기업들로선 비메모리로의 전환 시점이 도래했고, 정부 차원의 예산 투입은 이미 시작됐다. 대구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경북 경산에서 생산하는 프로젝트는 미래 먹거리를 대비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호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 국책 사업이다. 수도권 라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국토균형발전을 꾀함과 동시에 원전 등 에너지 생산 시설이 있는 지역에서 전력이 직접 소비될 수 있게 하는 산업 효율성도 제고할 수 있다.

걸음마 단계인 해당 사업을 위해 경산시는 최근 대임지구 인근에 대규모 비메모리 생산 공장 부지 마련을 구상하는 등 채비에 나섰다. 조현일 경산시장에 따르면 관내 6개 대학교와 연계해 전문 인력를 양성하고, 대임지구를 활용한 정주 여건을 높인다면 세계적 반도체 테크노 밸리로의 성장도 가능하다. 국내 반도체 시장이 전통적 구조에서 벗어나 비메모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석권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는 '화성·수원(에서 만드는) 반도체'가 아니라 '경산 반도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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