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싼 논의에 불이 붙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의 후속 조치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내세운 상법 개정을 통해 주식시장의 투명성 강화, 주주권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섣부른 상법 개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다.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해, 이사회 기능 마비 등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주를 보호하는 제도 강화와 더불어 경영권 방어 제도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쟁점이 된 '이사 충실 의무' 실효성 의문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만이 아닌 '주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를 법제화 하는 셈이다.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대기업, 중견·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상법 개정안이 투기자본에게 경영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법 개정 후 소송·분쟁에 휘말리게 될 경우 경영진이 의사 결정을 내리고 사업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하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송 리스크에 따른 의사결정 지연은 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가로막고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공격 확대로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며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켜 선량한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고 국부를 유출해 국민과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을 당하는 사례가 이전에 비해 늘었다. 한경협이 201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경영권 분쟁 소송을 공시한 기업을 분석한 결과, 피소 공시 기업이 2023년 상반기에만 47곳으로 2022년(28건)에 비해 1.7배 늘었다.
특히 한경협은 관련 제도 개선 후 국내 100대 기업 중 16개 기업은 외국기관 연합에 경영권을 빼앗길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기업의 자산 규모는 100대 기업 전체 대비 35.3%에 달하는 수준이다.
◆해외 입법 사례도 부족···경영권 방어 수단도 마련해야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가 포함된 사례는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 8단체가 발간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에 대한 경제계 의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모범회사법에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믿는 방식으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사가 소송에 휘말린다고 해도 귀책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책임을 부담하지 않도록 해,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의 회사법 역시 이사의 의무를 회사에 대해 부담하도록 한다. 다만 사원 전체 이익을 위해 회사의 성공을 촉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는 조항도 별도로 있으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지 않았다. 이밖에 독일, 캐나다, 일본 등 주요국 법안에도 회사의 이익을 위한 책임이 규정돼 있다.
이사의 배임죄 규정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G5(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에 비해 더 강력한 처벌규정을 갖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경영권 공격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주환원, 지분율 희석 등을 이유로 갈등을 조장해 경영 일선에 혼란을 초래하면 외국계 펀드에 취약한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주를 보호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투세를 폐지하면서 상법 개정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이는 기업을 옥죄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자칫 투기세력이 경영진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경영진, 이사회가 내리는 결정이 최선이라는 보장은 없으나 회사에 기여하겠다는 선의가 밑바탕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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