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던 학창 시절엔, 처음 아이팟으로 옮겨가고 나서의 경험이 생생하다. 특히 지금의 아이폰의 축소판이라 봐도 무방한 아이팟 터치는 아이튠즈라는 애플만의 서비스를 통해 노래, 사진 그 외 미디어를 백업하고 관리함으로써 내 기기를 꾸려나간다는 재밌는 경험을 선사했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20여 년간 아이팟이 21세기 음악 소비 트렌드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애플의 전 아이팟 부문 부사장인 토니 퍼델로부터 시작됐다. 오랫동안 '디지털 주크박스'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고민은, 첫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아이팟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
퍼델의 30년이 넘는 실리콘밸리 경력은 스타트업인 제너럴 매직에서 시작됐다.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3년간 이곳에서 일하며 소니, 필립스, 마쓰시타, 도시바 등과 협력해 개인용 핸드 헬드 통신기 제품군을 개발했다. 이후 그는 1995년 필립스에서 계속해서 모바일 제품군을 개발해오며 오랜 시간 음악 플레이어에 대해 생각했다. 1990년대 말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컴퓨터에 MP3 오디오 파일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고품질의 음악이 하드 드라이브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은 파일로 변환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음악 파일을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없어 오직 컴퓨터 스피커로만 들어야 했다. 그가 음악 재생용 기기의 잠재력을 본 지점이다.
이후 그는 '퓨즈'라는 회사를 창업해 직접 개발에 나섰지만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다른 회사에서 제품을 개발하기로 한다. 오히려 이때의 실패가 애플과 아이팟의 시작이 된 셈이다. 퍼델이 만들고자 했던 음악 플레이어는 초창기 아이팟의 모든 개념을 담고 있었다. 음악 플레이어와 온라인 음악 스토어에 대한 아이디어로 스티브 잡스의 관심을 끌어낸 그는, 2001년 아이팟을 설계하고 애플의 오디오 전략을 계획하는 작업자로 고용돼 아이팟의 개념과 초기 디자인을 만들었다. 아이팟의 창시자로서 총 18세대에 걸친 초기 아이팟을 만든 팀을 이끌었다. 동시에 잡스의 복귀에도 휘청이던 컴퓨터 제조회사였던 애플을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거듭나게 한 혁신가이기도 하다. 이후 그는 아이팟에 빠져있던 잡스를 설득해 아이폰의 공동 제작자로서 아이폰의 첫 3세대 개발까지도 함께했다.
그런 그는 2008년 돌연 애플을 퇴사하게 된다. 대기업의 간부가 돼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2010년 네스트 랩스를 설립한다. 그는 그곳에서 사물인터넷 시대를 연 지능형 온도조절기 '서모스탯'을 개발했고, 이후 회사는 구글에 32억 달러에 인수되며 큰 화제가 됐다. 현재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코칭하는 투자 및 자문 회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혁신적인 제품은 비타민이 아니라 진통제와 같다. 당장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제품이어야 한다."
퍼델은 300개 이상의 특허를 낸 유능한 엔지니어이지만, 그 과정에서 성공과 좌절을 널뛰기하며 비즈니스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이런 그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솔직하게 담은 첫 저서가 출간됐다.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USA투데이,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사실상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말지', '어떤 직장으로 이직을 해야 하는지', '이 아이디어가 괜찮은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창업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현대 직장인들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인 셈이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에선 여러 조직의 사원, 팀원, 관리자를 거치며 터득한 원칙들을 그의 경험과 함께 잘 녹아냈다. 특히, 그는 모두가 기기 자체에 주목할 때 '사용자 경험'을 일찍이 강조했다. 고객이 제품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설치하고, 사용하고, 고치고 심지어 반품하는 과정까지 정확히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 소비의 양상이 더욱 짙어지는 오늘날, 시대를 초월한 그의 통찰력이 그를 세기의 발명가로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544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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