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10시쯤 대구 중구 대구중장년내일센터 7층 강의실. 50대 위주의 중장년 여성 29명이 대여섯명씩 모둠을 이뤄 책상에 앉아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전날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생활지원사 취직을 돕기 위한 교육이 진행됐다. 생활지원사는 노인들을 돌보며 간단한 생활 교육과 안전 지원, 사회 참여 지원 등 여러 업무를 수행한다.
수업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심뇌혈관 질환 예방수칙을 트로트 음악에 맞춰 소개하는 영상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위급 상황 시 어르신을 도울 수 있도록 하임리히법(기도가 막혔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법) 실습도 이뤄졌다. 수강생은 2명씩 짝을 지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자세를 익혔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조모(59) 씨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하반기에 명예퇴직하고 현재는 생활지도사 1급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조 씨는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내가 직장 생활을 해온 기간 만큼 퇴직 이후의 삶도 길 것이기에 일찍 준비하고 싶어 퇴직을 서둘렀다"며 "50대 후반은 취직하기 어려워 걱정이지만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후 저출생, 고령화 기조에 따라 60세 정년을 지난 고령층의 노동은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고령층 일자리 실태를 파악한 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구 60세↑ 취업자, 30년 전보다 7배 증가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인구 중 학생과 주부, 경제활동 참가 의사가 없는 사람 등을 제외한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11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60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3분기 기준 2014년 36.6%에서 올해 42.5%로 10년 새 5.9%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20~29세는 62.1%에서 53.6%로 감소한 것과는 상반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제로 일하는 비율인 고용률 또한 60세 이상에서 뚜렷하다. 대구의 60세 이상 3분기 고용률은 2014년 35.9%에서 2024년 41.5%로, 10년 새 5.6%p 올랐다.
10년 단위로 살펴본 취업자 수 증가세도 가파르다. 매년 3분기 기준 대구 60세 이상 취업자는 1994년 4만3천명에서 2004년 9만6천명, 2014년 15만4천명으로 10년마다 2배가량 뛰어 올해는 28만5천명을 기록했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과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대구 전체 인구(235만3천742명)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8.4%다. 이 비율은 2026년 30.7%로 향후 2년 만에 30%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후 빠르게 증가해 2035년(40.5%)에 40%대를 넘어서고, 꾸준히 상승해 2052년 49.5%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구 시민 2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 되는 셈이다.
◆고령층 단시간, 임시직 비율 높아…OECD 최상위
이처럼 60세 이상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들의 고용 안정성은 취약한 실정이다.
코로나19로 고용 악화 직격탄을 받은 2020년 1분기 실업률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이 시기 대구의 30~59세 실업률은 2.5%로 직전 2019년 4분기(2.1%)보다 0.4%p 상승에 그친 반면, 60세 이상에선 같은 기간 2.9→4.9%로 증가 폭이 컸다.
이는 고령 근로자 대부분이 단기간 임시 근로 형태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간한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증가 현황과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임금 근로자(2022년 기준 181만4천명)의 61.6%가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였다. 이 비율은 여성 임금근로자가 78.4%, 고졸 이하 저학력자가 64.0%였다.
65세 이상의 경우 임시근로자 비율이 56.1%로 가장 높았고, 상용근로자 비율은 34.3%에 그쳤다. 일용직 비율은 9.6%였다.
임시근로자는 1개월~1년 미만으로 고용된 사람을 뜻한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계약기간이 설정된 사람 또는 무기계약인 경우다.
우리나라는 특히 중·장년층 임금근로자 가운데 임시 고용 형태로 일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 고용 비율은 34.4%로, OECD 36국 중에서 가장 높다. 2위인 일본(22.5%)과의 격차도 10%p 이상 벌어졌다.
◆고용불안정성 개선·은퇴 후 재교육 활성화 숙제
저출생으로 청년층의 생산성과 소비력이 갈수록 줄어드면서 60세 이상 인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질적인 노인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현 경북연구원 경북RISE사업추진단 단장은 "퇴직 후 자신이 몸 담았던 업계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하는데, 이러한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고령자들의 일자리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 노동시장의 정규직·비정규직 이중 구조 때문으로, 근본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완화해야 고령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층이 몰리는 '미니잡'(주당 15시간을 넘지 않는 초단시간 근로) 등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여전히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만연해 이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며 "특히 대구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은 편이라, 일자리 공급을 위해선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퇴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리턴십(Returnship)' 현상은 이전부터 주목 받아왔지만, 은퇴 후 재교육에 대한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올해 5월 기준 55~79세 가운데 지난 1년간 직업능력개발훈련에 참여한 비율은 13.1%에 불과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기만 해선 안 된다. 여전히 노동력을 갖고 있다면 소중히 활용하면 되는 것"이라며 "고령 노동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누적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무엇이 있는지, 지역 산업 구조에 맞춰 이를 어떻게 창출해낼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현재 직장 내에서 퇴직을 앞둔 이들에 대한 재교육도 잘 이뤄지고 있지 않고, 노조가 없는 영세한 직장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며 "지자체에서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대부분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의 경우 더더욱 이러한 정보들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지자체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홍보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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