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가족 간 유대, 사람들 사이의 정(情), 훌륭한 음악적 전통, 춤과 노래가 많습니다. 왜 이런 아름다운 것을 버리고 미국과 같은 스타일을 모방하는지 정말 안타까워요."
그리스 출신으로 26년간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해 온 조성암(64·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최근 한국의 결혼식에 갔다가 하객들이 신랑·신부를 축하하는 데에는 형식적이고 축의금을 낸 뒤 피로연장으로 직행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며 22일 이같이 말했다.
한국에 부임했던 초기와 너무 달라진 결혼식 풍경에 놀라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함께 갔던 한국 지인들이 "이게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반응했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으로 선임된 그는 이날 서울 마포구 한국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에게 지금 부족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며 한국외국어대에서 학생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을 소개했다.
그는 과거에는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면 서로 대화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몰입하느라 바로 곁에 있는 친구들과 대면 소통을 잘 하지 않는다고 달라진 세태를 거론했다.
"예전에는 결혼식장 가면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하객도 풍성했는데 지금은 형식적으로 의례를 치릅니다. 사랑의 부재, 소통의 부재가 어디까지 왔는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직접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며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사랑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행동·실천을 의미한다. 특히 희생이 있는 실천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조 주교는 그리스도교가 여러 분파로 나뉘어 경쟁하는 듯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조금만 교파가 달라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느낀다는 뜻을 표명했다.
"저에게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냐고 물으면 저는 '정교인'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느냐고 물어요. 그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정교에 대해, 다른 교파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모른다는 것이죠."
정교회(Orthodox Church)는 옛 동로마 제국의 국교로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독교의 한 교파이다. 가톨릭과 함께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오래된 두 종파 중 하나로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와 분리됐다.
조 대주교는 "기후 위기는 정말 거대하고 중대한 문제"라며 "우리는 바로 재앙, 큰 파국 직전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배포한 회견문에서는 "온 지구 생명 공동체를 돌보는 일에 앞장서며, 한국교회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도록 독려하고,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겠다"고 NCCK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조 대주교는 특히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기후 위기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하고서 "약자·소수자 편에 섰던 역사를 이어받아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는 세상, 모든 생명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 불평등에 도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화와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하며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교회가 되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1960년 그리스 아이기나섬에서 출생한 조 대주교는 199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98년 아테네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해 12월부터 한국 정교회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 주임사제, 대교구 수석사제를 지냈으며 2008년 7월 한국 대주교로 착좌했다. 2016년 11월 한국 정교회 대주교로는 처음으로 NCCK 회장으로 선임돼 1년간 활동한 바 있다. 이달 18일 NCCK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돼 8년 만에 다시 같은 자리를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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