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상속세율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공익법인을 통한 가업 승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한 5가지 이유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1997년 45%, 2000년 50%로 인상된 이후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대주주 할증과세 시에는 최고세율이 60%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국내 기업인들은 승계 시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을 팔거나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불가피한 탓에 외부세력의 경영권 탈취 위험이 높은 것은 물론 기업 운영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상당수 기업들은 복지, 장학 등 각종 재단(공익법인)을 설립해 우회적으로 상속세를 회피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처럼 공익법인을 통해 기업의 장기 존속을 보장하고 사회 공헌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단의 이면…상속의 수단?
기업은 이윤추구를 제1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나 사회적 책임도 동시에 지닌다.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기업 사회적 책임'(CSR)이 발전해 현재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추세다.
공익재단 설립 및 운영은 CSR, ESG 경영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나 또다른 목적이 있다. 상속세를 절감하고 오너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를 면제한다. 다만 특정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으며,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성실공익법인재단으로 인정받을 경우 이를 초과할 수 있다.
기업들은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공익법인을 이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 집단 공익법인 215곳(2023년 기준) 가운데 총수 일가 포함 특수관계인이 이사로 재임하는 법인은 160곳(74.4%)으로 집계됐다. 또 주식을 보유한 공익법인 148곳 중 총수 2세가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는 50곳(33.7%)으로 나타났다.
대구지역 기업들도 공익법인을 설립·운영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 공시 열람을 통해 확인한 결과 공익법인이 모기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수 일가가 대표자 혹은 이사진을 맡고 있다.
A재단의 경우 모회사 지분의 8.77%를 보유하고 있다. 재단 소유 주식 지분율은 지난 2017년 4.83%였으나 승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유 주식 수를 2배 이상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재단 총 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94.34%에 이른다.
대구 경제계 한 관계자는 "상속을 목적으로 재단 보유 주식을 과도하게 늘린 탓에 정작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다. 과도한 상속세가 원인이겠지만, 공익법인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도 '발렌베리' 가문이?
해외에는 공익법인을 통한 승계를 인정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회 공헌을 활성화하는 선순환 사례가 자리잡고 있다.
공익법인 산하 기업 승계로 5대에 걸쳐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대표적이다. 금융, 건설, 항공,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기업을 육성해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1/3을 책임지고 있다. 개인이 주식을 소유하지 않고 10년 이상 후계자 평가를 받은 이들이 경영권을 이어받는다.
바이오 기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노보노디스크(덴마크)와 첨단 광학 기술을 보유한 자이스(독일) 등도 재단을 통한 상속으로 지배구조를 유지하며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의 주식출연 허용 비율도 한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주식출연 및 보유를 제한하는 현행 상속제를 개편해 기부문화를 활성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국제자선단체 CAF 조사 결과, 한국의 기부참여지수는 38점으로 142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79위에 머물렀다. 특히 유산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해 미국(8%), 영국(33%)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인협회 책임연구위원은 "공익법인은 복지국가의 기능을 일부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규제로 인해 공익법인 수가 늘어나지 않고 활동도 제한되고 있다"며 "주식출연에서 탈피해 공익활동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더 초첨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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